롯데그룹의 연말 인사에서 주목할 대목은 각 계열사 대표들이 저마다의 사업에서 구조적 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느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올해 7월 사장단 회의에서 지난 10년간 그룹의 사업 경쟁력이 정체됐다고 진단하고 비핵심 사업 효율화와 수익성 중심 투자,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출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 구조와 수익 창출 방식을 바꿨는지가 경영진 평가의 기준으로 떠올랐다.
27일 롯데그룹의 행보를 종합해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1월 말 전후로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대규모 인적 쇄신보다 기존 경영진의 사업 재편 성과를 점검하는 데 무게가 실릴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그룹은 2024년 대표이사 21명을 교체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20명을 바꾸고, 9년간 유지한 사업군별 헤드쿼터(HQ) 체제를 폐지하는 등 경영진과 조직 구조를 동시에 손질했다. 2년 연속 대대적 변화에 나선 만큼 올해는 새 경영진과 달라진 의사결정 체계가 실질적 성과를 내고 있는지 확인할 시점으로 분석된다.
신 회장은 올해 1월 사장단 회의에서도 수익성 중심 경영과 진행 중인 투자에 대한 타당성 재검토를 주문했다. 7월에는 비핵심 사업 효율화와 핵심 브랜드의 글로벌 가치 제고, 재무 건전성을 고려한 투자를 강조했다.
다음달 인사를 앞둔 정현석 백화점사업부 대표이사 부사장과 차우철 할인점·슈퍼사업부 대표이사 사장도 이러한 주문을 사업 성과로 얼마나 구현했는지가 평가 대상이다. 백화점은 실적 성장과 점포 재편에도 고객 기반 다변화가 검증 과제로 남았고, 마트·슈퍼는 상품과 운영 방식의 변화를 추진했지만 본업 경쟁력과 손익 개선을 입증해야 한다.
◆ 정현석, 점포 효율화 넘어 고객 기반 넓혔나
정 대표의 성적표에서는 실적 개선과 점포 구조조정이 눈에 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상반기 매출 1조7635억 원, 영업이익 310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8.7%, 59.4% 증가했다. 롯데쇼핑 전체 영업이익의 약 90.7%를 백화점 부문이 차지할 만큼 이익 기여도도 높았다. 부진 점포를 정리하고 핵심 점포에 투자를 집중한 점은 신 회장이 주문한 수익성 중심 경영과 맞닿아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3월 분당점을 폐점했고 미아점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건대스타시티점은 2028년 10월 영업을 종료하기로 했다. 반면 잠실점에는 약 800억 원을 투입해 핵심 점포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모든 점포의 외형을 키우기보다 경쟁력이 낮은 사업장을 정리하고 성장성이 높은 점포에 자원을 집중한 것이다. 이는 투자 타당성 재검토와 사업 효율화라는 그룹의 주문에 부합하는 조치다.
다만 점포를 정리하고 핵심 점포에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 구조 개선의 성과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점포별 수익성이 실제로 개선됐는지, 절감한 비용이 지속적인 이익 증가로 이어졌는지까지 확인해야 한다. 백화점 부문의 상반기 실적 역시 정 대표 개인의 성과로 온전히 돌리기는 어렵다. 정 대표는 올해 1월 공식적으로 백화점사업부 대표를 맡았다. 상반기 실적에는 취임 전부터 진행된 점포 운영과 투자, 기존 사업의 성과도 반영돼 있다.
고객 기반 다변화 측면에서는 성과와 미검증 영역이 공존한다. 롯데백화점은 외국인 관광객 매출을 늘리며 새로운 수요를 확보했다. 외국인 매출은 올해 7월 이미 지난해 연간 수준을 넘어섰고, 10월 누적 기준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외국인 고객 유치는 실적을 끌어올린 성과지만, 관광 수요를 넘어 국내 고객층과 비명품 상품군까지 경쟁력을 넓혔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점포 경쟁력에서도 격차가 남아 있다. 2025년 국내 백화점 매출 상위 10곳 가운데 롯데백화점 점포는 잠실점과 본점 두 곳이었다. 신세계백화점은 네 곳, 현대백화점은 세 곳이 이름을 올렸다. 핵심 점포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과 경쟁사에 맞설 수 있는 점포를 폭넓게 확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외국인 관광객과 명품 수요에 기대는 실적 개선을 넘어 고객 구성과 상품군별 매출을 다변화했는지가 정 대표의 체질 개선 성과를 가를 대목이다. 다만 국내 고객 매출과 상품군별 성장률을 보여주는 구체적 자료가 없는 만큼, 고객 다변화의 성패를 단정하기보다는 이를 입증할 추가 지표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 대표의 이력도 이번 평가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는 과거 유니클로 운영사인 에프알엘코리아 대표로 재직하며 저수익 점포 정리와 수익성 개선을 경험했다. 당시 롯데그룹은 점포 효율화 역량에 주목해 그를 백화점 사업의 새 수장으로 발탁됐다. 백화점에서도 점포 재편을 시작했지만, 효율화 조치가 일회성 비용 절감을 넘어 사업 전반의 수익성과 고객 경쟁력을 높였는지는 아직 검증 단계다.
◆ 차우철, 마트의 본업 경쟁력은 얼마나 달라졌나
차우철 대표의 평가는 실적 반등 여부만으로 가리기 어렵다. 롯데그룹이 2025년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대대적 경영진 교체에 나선 가운데 차 대표는 롯데쇼핑에서 유일하게 사장으로 승진했다. 롯데GRS 대표 시절 부진 사업을 정리하고 브랜드 경쟁력과 수익성을 끌어올린 경험을 인정받은 결과다. 차 대표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기 손익 개선을 넘어 경쟁력이 약해진 마트·슈퍼의 상품과 운영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차 대표의 이전 성과는 이번 평가의 기준이 된다. 그는 롯데GRS 대표를 맡은 2021년 이후 매출을 확대했고, 롯데GRS는 2022년 영업흑자로 돌아선 데 이어 2025년 매출 1조 원을 넘어섰다. 비효율 점포를 정리하고 핵심 브랜드에 집중한 경험은 비용 구조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선하는 역량을 보여준다.
다만 외식업에서 거둔 성과가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도 재현되려면 상품 경쟁력, 점포 운영, 온라인 물류를 함께 개선해야 한다. 가격과 배송을 앞세운 온라인 사업자와 경쟁하는 식료품 유통은 단순한 비용 절감만으로 고객을 되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품 부문에서는 가격 부담을 낮추는 변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1천 원 이하 자체브랜드(PB) 상품 수는 2024년 45개에서 2026년 6월 90개로 늘었고, 올해 1월부터 6월8일까지 해당 상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 증가했다. 고물가에 대응해 선택지를 넓히고 고객 유인 수단을 강화했다는 점은 성과다.
하지만 저가 상품의 확대가 곧 상품 경쟁력의 차별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가격뿐 아니라 품질과 구색에서도 고객이 롯데마트를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관련 상품의 판매 증가가 PB 전체의 수익성이나 고객 재구매, 다른 상품군으로의 구매 확대로 이어졌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마트와 슈퍼의 통합 운영도 체질 개선을 가늠할 지표다. 상품 소싱과 물류, 점포 운영에서 중복을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 통합의 의미가 생긴다. 다만 통합 자체는 차 대표가 새롭게 시작한 조치라기보다 기존에 추진해 온 사업 방향이다.
따라서 평가의 초점은 조직을 합쳤다는 사실이 아니라 구매 원가가 얼마나 낮아졌는지, 그 효과가 판매 가격과 점포별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됐는지에 맞춰야 한다. 자산 효율화와 희망퇴직 등 비용 구조 조정 역시 일회성 절감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 운영 효율로 이어져야 한다. 차 대표가 롯데GRS에서 보여준 경영개선 역량이 마트·슈퍼에서도 실질적 시너지로 이어졌는지는 아직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식료품 사업에서는 투자 확대보다 투자 효율을 입증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롯데마트는 인공지능 기반 장보기 앱 ‘롯데마트 제타’를 선보인 데 이어 영국 오카도의 자동화 물류 시스템을 적용한 제타 스마트센터 부산을 올해 8월 가동했다. 자동화 설비를 통해 주문 처리와 재고 관리의 정확도를 높이고 신선식품 배송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오프라인에서 쌓은 식품 운영 역량을 온라인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본업 경쟁력 강화와 맞닿아 있다.
다만 센터 가동 자체가 투자 성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주문량과 가동률을 높이고 배송 밀도를 확보해야 물류비를 낮추고 고정비 부담을 흡수할 수 있다. 롯데마트가 고양 센터 공사를 잠정 중단하고 부산 센터의 운영 성과를 우선 확인하기로 한 것도 투자 효율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대규모 투자를 예정대로 집행하기보다 수익성을 확인한 뒤 후속 투자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에서는 신 회장의 주문과 맞닿아 있다. 다만 이를 성공적인 자본 배분으로 평가하려면 부산 센터의 운영 효율과 투자 회수 가능성, 후속 투자 결정까지 확인해야 한다.
해외 사업 역시 출점 확대와 이익 창출력을 구분해 평가해야 한다. 롯데마트는 베트남에서 신규 점포를 열며 성장 기반을 넓히고 있다. 국내 시장의 성장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 사업 확대는 의미가 있지만, 점포 수 증가만으로 안정적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올해 2분기 해외 마트 사업 영업이익은 4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5% 감소했다. 현지 소비 여건과 점포 운영 효율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출점 규모뿐 아니라 국가별 이익 창출력도 함께 살펴야 한다.
◆ 체질 개선 성과 확인할 인사, 연임 여부는 미지수
정 대표와 차 대표의 재임 기간이 길지 않다는 점은 연말 인사에서 고려할 변수다. 차 대표는 지난해 말 새 수장으로 내정됐고, 정 대표도 올해 1월 공식적으로 백화점사업부 대표를 맡았다.
롯데그룹이 2년 연속 대규모 CEO 교체와 조직 개편을 단행한 만큼, 올해는 기존 경영진이 달라진 체계 안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지 살펴볼 시점이기도 하다. 다만 연임 여부를 뒷받침하는 공식 신호가 확인된 것은 아닌 만큼, 조직 안정 기조만으로 두 대표의 유임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연재기사
인기기사
- 1 국힘 주진우 '김혜경 골프 의혹' 헛발질 : 해당 골퍼가 당장 부인, 그 정도 확인도 없이 터뜨리나
- 2 이스라엘 총선 D-1, 네타냐후 재집권 '빨간불' : 19년 집권 끝에 감옥 가고 미국-이란 전쟁 끝나나
- 3 '볶음너구리'부터 걸그룹 'A2O LITE'까지, 과거에서 답을 찾다 : 마시면 이틀 뒤 일어나는 '캪틴큐'도 품절
- 4 전쟁으로 '떼돈' 번 트럼프, 미국 중간선거 맞아 '부패 의혹' 쟁점 되나 : 공화당 텃밭 텍사스도 균열 조짐
- 5 '영아 사망 사건' 아주대 병원 소아과 압수수색에 전문의 7명 사직 의사 : 경찰 "압수수색 걸린 시간은 17분"
- 6 '통곡하며 차선 하나 점령' 서울 강남대로 한복판 활보한 만취 여성 : 국내 성인 3명 중 1명 '1달에 1번 이상 폭음'
- 7 이번엔 사과를 썰었다! 삼성전자 갤럭시 15년째 애플 아이폰 긁는 광고 : 풍자가 부메랑으로 돌아오진 않을까
- 8 비 쏟아지자 소방대원은 울먹이며 감사기도 올렸다 : 몇달 동안 산불과 싸우는 인도네시아, '산소 버스'도 등장
- 9 시인 윤동주, 타국 옥사 81년 만에 최고등급 '금관문화훈장' 수훈 :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10 "입맛 뚝 떨어진다" 배달앱·음식점 'AI 음식 사진'에 손님들이 발길 돌린다 : 신뢰의 문제로 번진다
최신기사
-
씨저널&경제 LG전자 AI 데이터센터 냉각 수주 석 달 새 6천억에서 3조로 : 3분기 영업이익 13.5% 늘었지만 가전·공조는 이익 줄었다AIDC 냉각 수주 약진
-
씨저널&경제 HD건설기계 엔진 사업 2030년까지 매출 2조5천억 규모로 키운다 : 군산 엔진 신공장에 거는 기대엔진으로 데이터센터 시장 노린다
-
뉴스&이슈 [허프 사람&말] 민주당 한민수 신천지 의혹 두고 "가해자와 피해자 분명, 저는 피해 봤다" : 김민석 정면 압박"비공개 회의에서 10분간 구두 보고"
-
엔터테인먼트 일론 머스크가 큰소리 친 AI 버전 '오디세이',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 가디언 "괴상한 분노가 낳은 결과물"'노이즈 마케팅'일 수도
-
씨저널&경제 HD현대일렉트릭 김영기 고부가가치 사업 집중해 수익성 1위 지킨다 : 높아지는 데이터센터향 수요에 증설까지 나서HD현대일렉트릭 영업이익률, LS일렉트릭의 약 2배
-
보이스 [허프 생각] 앤트로픽 IPO, 모나미 상장폐지 위기, 일본 2027년 다이어리 최대 판매 기록이 모두 같은 시대에 벌어지는 일이라니2027년 다이어리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
글로벌 SK하이닉스 '장기 공급 계약 확보' 내세우며 'AI 회의론' 진화 나섰다 : 미국 연준 금리 인상 여부는 변수로SK하이닉스, 장기적 메모리 수요 낙관적으로 전망
-
씨저널&경제 이찬진 금감원장 은행지주 이사회 안건 99% 원안 가결에 쓴소리 : "경영진 견제하고 CEO 인선 투명성 높여야"993건 중 983건이 원안가결
-
뉴스&이슈 [KSOI] 민주당 지지도 31.5%로 최저치, 호남·40대·50대는 물론 중도층도 추락 : 국힘과 격차 9.0%p로 확대김민석 지도부 위기관리 능력 우려
-
뉴스&이슈 정의당, 이 대통령 '외국인 노동자' 발언 문제점 직격 : 노동자가 임금 받아 송금한 게 타박받을 일인가외국인 노동자는 '노동자' 아니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