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이 지주사 한진칼 지분율에서 자신의 턱밑까지 쫓아온 호반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일본항공(JAL)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으며 우군으로 끌어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2025년에는 자기주식 0.66%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의결권을 되살리면서 우호지분을 확보하기도 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 대한항공
이 같은 행보는 호반그룹이 지분율을 꾸준히 높이면서 경영권에 위협이 되는 수준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현재 조원태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0.57%인데, 호반그룹 지분율은 7월 기준 20.15%에 이르렀다. 단 0.42%p 차이다.
다만 조원태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14.90%), 한국산업은행(10.58%), LX판토스(3.83%)의 지분율을 합치면 29.31%에 달해 호반그룹이 즉각적으로 경영권 확보를 도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조원태 회장은 잠재적인 위협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도 우호세력을 지속해서 확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은 한국산업은행 지분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2020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유상증자 5천억 원)과 대한항공(교환사채 3천억 원)에 총 8천억 원을 지원하면서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1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 마무리되면 투자목적을 달성하게 돼 단계적으로 엑시트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조원태 회장으로서는 산업은행 보유 지분을 받아낼 우호적 투자자를 발굴하거나 국내 기업을 포섭하는 데 관심을 기울일 유인이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5.11%)의 표심도 변수다. 국민연금은 2026년 3월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 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2017년 3월 한진칼 정기주주총회, 2021년과 2024년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한 바 있다.
산업은행과 국민연금 지분이 비우호 지분으로 바뀐다고 단순하게 가정하면, 조원태 회장이 확보한 지분율은 현재 약 50%에서 40%로 줄어들고 호반 쪽 지분은 35% 수준으로 늘어난다.
이와 관련해 조원태 회장이 우호지분 확보와 함께,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임으로써 일반주주들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 달가량 남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은 조원태 회장의 핵심 과제다. 노선과 항공기 운영, 인력, 마일리지, 화물 등에서 실질적인 통합 시너지를 내면서 통합 항공사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전략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최정호 대한항공 영업총괄 부사장(오른쪽 네 번째)이 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항공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사실을 발표하고 로스 레겟 일본항공 노선사업본부장(왼쪽 네 번째)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 대한항공
◆ 일본항공 우호세력 영입
1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일본항공은 최근 대한항공과 전략적 파트너십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한진칼 지분을 취득했다. 다만 지분 투자 목적과 정확한 지분율, 취득 주식 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오랜 기간 우호적 사업관계를 이어온 두 기업의 역사를 고려할 때 일본항공이 대한항공의 백기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한항공과 일본항공은 지난 60여 년간 한일 노선 공동운항 등에 대해 협력해 왔다.
특히 이번 협력 확대 방안이 호반그룹의 지분율 공시 이후 발표되면서 이 같은 추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호반그룹은 7월10일 자신의 한진칼 지분율이 이전 공시 시점인 2025년 5월 18.46%보다 1.69%p 높아진 20.15%라고 공시한 바 있다.
협약에 따라 두 회사는 12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을 계기로 한일 노선 공동운항(코드쉐어)과 마일리지 제휴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대한항공의 일본 노선은 현재 주당 약 250편에서 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 약 400편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이 통합 후에도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해온 노선을 유지할 방침이어서 일본항공과의 공동운항 대상 항공편은 크게 늘어난다.
◆ 호반그룹의 한진칼 지분 확보 역사
호반건설을 주축으로 하는 호반그룹은 현재 한진칼 지분 20.15%를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별로는 호반건설이 11.50%, 호반호텔앤리조트가 8.34%, 호반산업과 ㈜호반이 각각 0.17%, 0.15%를 들고 있다.
호반그룹은 2022년 3월 당시 조원태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한 행동주의 펀드 KCGI의 지분 17.43% 전량을 인수하는 계약을 맺으며 한진칼 2대주주에 올랐다. 당시 13.97%는 즉시 현금(5640억 원)으로, 나머지 지분은 콜옵션과 신주권 인수, 계열사(㈜호반)의 별도 매입으로 각각 취득했다.
호반그룹은 2022년 12월 자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한진칼 지분 5%를 하림그룹 계열사인 팬오션에 1259억 원을 받고 매각했다. 하지만 2023년 HMM 인수전에 뛰어든 하림의 자금 확보 필요성이 커지자 그해 10월 호반호텔앤리조트를 통해 팬오션의 한진칼 지분 5.85%를 1628억 원에 되사왔다. 당시 판매 가격(주당 3만7715원)보다 비싼 가격(주당 4만1710원)으로 재매입했는데,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한진칼 경영권에 대한 호반그룹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호반그룹은 2025년 3월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 인상안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이는 그간 한진칼 지분 매입 목적을 ‘단순 투자’로 공시해 온 호반그룹이 한진칼에 대한 견제와 영향력 행사를 본격화한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이후 호반그룹은 장내매수를 통해 2025년 5월 18.46%, 2026년 7월 20.15%까지 지분율을 높였다. 다만 여전히 투자 목적은 ‘단순 투자’로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