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테슬라부터 우주기업 스페이스엑스(X), 인공지능(AI), 소셜미디어 엑스(X)까지 거머쥔 일론 머스크를 4시간 가까이 들여다본 영화가 나왔다.
영화의 주인공인 머스크는 작품이 공개되자 감독을 향해 날을 세웠다.
알렉스 기브니 감독이 2026년 9월8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 ‘Musk’ 포토콜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 일론 머스크. ⓒAP/로이터/연합뉴스
“기브니는 진정성이 전혀 없다. 영(Zero). 다행인 건 그의 영화들이 엄청 지루하다는 거다.”
머스크는 9일(현지시각) 엑스(X·옛 트위터)에 다큐 영화 ‘머스크’를 연출한 알렉스 기브니 감독을 겨냥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히트 피스(hit piece)’라고 주장하며 기브니 감독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머스크는 다큐멘터리 제작 소식이 알려진 2023년 3월7일에도 트위터(현 엑스)에 “히트 피스다(It’s a hit piece)”라고 적었다. 이에 기브니 역시 트위터를 통해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How would you know)?”고 맞받았다.
3년여의 제작을 거친 머스크 다큐 영화는 8일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 러닝타임은 3시간45분(225분)에 달한다.
머스크 없는 ‘머스크’ 다큐
기브니는 기업 엔론의 몰락을 다룬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미국의 고문 문제를 추적한 ‘택시 투 더 다크 사이드’, 사이언톨로지를 파헤친 ‘고잉 클리어’ 등으로 이름을 알린 탐사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그는 ‘택시 투 더 다크 사이드’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 기브니의 카메라는 세계적인 기업가이자 막대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머스크를 정조준했다.
머스크 본인은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머스크가 감독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머스크의 가족과 전 부인, 과거 함께 일했던 동료 등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들의 증언과 방대한 기록을 통해 머스크의 삶과 사업을 재구성한다.
머스크의 빈자리를 채운 방식도 독특하다. 기브니는 머스크의 실제 과거 발언을 CGI 아바타가 말하도록 해 마치 자신과 인터뷰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AI는 머스크의 음성을 아바타의 입 모양에 맞추는 데 활용됐다.
이는 우리가 현실이 아닌 고도로 발달한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을 가능성을 언급해온 머스크를 비튼 장치이기도 하다. 머스크와 AI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영화가 AI를 활용해 머스크를 불러낸 셈이다.
이를 두고 영화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다소 억지스러운 시각적 농담이라고 평하거나, AI와 머스크의 기술 권력을 비판하는 다큐가 정작 AI를 이용해 ‘가짜 머스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감독이 영화 속에서 다룬 것은 머스크 개인의 기행이나 사생활만이 아니다. 테슬라의 전기차부터 스페이스엑스(X)와 스타링크, 엑스, 인공지능(AI) 사업까지 머스크가 구축한 사업 영역을 따라가며 한 개인에게 기술과 자본, 정보, 정치적 영향력이 집중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감독이 주목한 ‘고귀한 목적에 의한 부패’
기브니는 머스크의 사업적·기술적 성취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머스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개념에 주목했다.
기브니는 7일 공개된 AP통신 인터뷰에서 머스크를 이해하는 개념으로 ‘고귀한 목적에 의한 부패(noble cause corruption)’를 제시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중요하고 선하다고 믿는 나머지, 그 목적을 위한 행동이라면 무엇이든 정당화하게 된다는 의미다. 기브니는 인류의 화성 이주와 기후변화 대응, 인공지능 등 거대한 미래를 이야기해온 머스크의 행보를 이 같은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영화의 질문은 머스크가 ‘천재인가 사기꾼인가’를 가리는 데 머물지 않고, 그가 이뤄낸 성취와 별개로 한 개인에게 막대한 기술적·경제적 권력이 집중됐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추적한다.
해외 평단도 머스크에게 집중된 막대한 권력에 주목했다. 영국 가디언은 8일 영화 ‘머스크’에 별점 5점 만점에 4점을 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가장 평범한 남자에 대한 장대한 연구”라고 평했다. 영화가 머스크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테슬라의 수익성과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 등 그가 일궈낸 실질적인 성취까지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지난 8일 미국 대중문화 전문매체 벌처는 리뷰 제목부터 ‘머스크는 무섭다(Musk Is Terrifying)’고 달았다. 벌처는 영화가 끝난 뒤 남는 두려움의 실체로 머스크가 축적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지목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 엑스(X)를 거쳐 정치권까지 뻗어나간 그의 영향력을 따라가는 이 작품을 두고 “인물 연구로서는 매혹적이고 현대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로서는 폭로적이며 우리의 미래에 대한 경고로서는 무섭다”고 평했다.
영화는 머스크라는 한 인물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바꾸겠다는 한 기업가에게 전례 없는 수준의 기술과 자본, 정보 권력이 집중됐을 때 그 힘을 누가 견제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