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AI(인공지능) 전환을 따라가 보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AI 쓰임새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롯데그룹의 AI는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서 시작해 현장의 의사결정을 돕고, 이제는 미래기술 연구에도 쓰이고 있다.
신 회장이 AI를 바라보는 시선도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에서 '미래기술을 연구하는 도구'로 확장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1일 대전 카이스트(KAIST) 본원에서 열린 롯데 x KAIST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롯데지주
14일 롯데그룹의 AI전략을 종합해보면 이번 R&D(연구개발)센터 준공은 AI 활용이 업무를 넘어 미래 기술 연구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11일 대전 카이스트(KAIST) 본원에서 ‘롯데×카이스트 R&D센터’ 준공식을 열었다. 센터는 롯데그룹의 100억 원 출연금에 카이스트 자체 재원을 더해 조성됐다. 지하 1층·지상 6층, 연면적 4298㎡ 규모다.
R&D센터는 기초연구부터 실험·시제품 제작·기술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연구를 수행한다.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바이오 지속가능성, 탄소중립 에너지·소재·공정, 첨단 식품·헬스케어 등을 연구한다. 시스템 대사공학과 바이오연료·바이오플라스틱, 그린수소, 재생에너지, 배터리 등도 주요 연구 분야로 다룬다.
AI는 이 과정에서 연구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된다. 롯데그룹과 카이스트는 반도체, 지속가능 에너지, 바이오·헬스케어 등 계열사별 전략 기술을 공동 연구하고 연구 성과를 그룹 사업과 연결한다. AI를 특정 서비스나 업무에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 연구개발 과정에도 접목해 새로운 기술과 사업 기회를 찾는 것이다.
신 회장의 AI 관련 메시지에서도 그가 AI를 바라보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신년사에서는 “비즈니스 모델 창출과 비용 절감 등 유의미한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AI 내재화에 집중하자”고 강조하며 AI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 데 무게를 뒀다. 2026년 신년사에서는 AI를 “강력한 도구”이자 “핵심 경쟁력”으로 규정하며 그 잠재력을 활용해 변화를 선도하자고 주문했다.
지난 6월에는 “AX는 선택이 아닌 그룹의 생존이 걸린 최우선 과제”라며 “일하는 방식의 혁신적 변화”를 강조했다. AI를 활용해 성과를 내는 것에서 조직의 경쟁력과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메시지가 확장됐다.
실제 롯데그룹의 AI 활용도 업무를 넘어 사업 현장으로 넓어졌다. 생성형 AI 플랫폼 ‘아이멤버’를 AI 에이전트 중심으로 고도화하고 전 임직원 대상 실무형 AI 교육을 확대하면서 직원들이 업무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신 회장이 직접 AI 서비스를 만들고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는 교육에 참여한 것도 이런 흐름의 하나다.
AI는 업무 지원을 넘어 현장의 판단에도 활용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4천여 개 브랜드 데이터를 분석하는 ‘브랜드AI’를 도입해 브랜드 간 경쟁 관계와 매출, 고객 특성 등을 보여준다. 상품기획자(MD)가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거나 입·퇴점 여부를 판단할 때 데이터와 경험을 함께 활용하도록 돕는다. AI가 업무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업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브랜드와 디자인도 AI 활용 영역에 들어왔다. 롯데그룹은 최근 디자인 전략회의에서 AI를 단순한 제작 도구가 아니라 그룹의 정체성과 철학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룹 차원의 ‘롯데 AI 디자인 스튜디오’를 통해 AI가 만든 결과물에 롯데그룹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작업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R&D센터에서 AI가 쓰이는 방식은 기존 활용 사례와는 또 다르다.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현장의 판단을 돕는 데 쓰이던 AI가 연구개발의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데까지 활용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AI가 ‘일하는 도구’에서 미래기술 연구를 돕는 도구로까지 확장된 셈이다.
이번 연구는 단기간의 성과보다 기술을 장기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존 AI 활용과 차이가 있다. 롯데그룹은 기업이 단독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원천기술 연구를 카이스트의 연구역량과 결합하고, 연구 성과를 계열사 R&D와 연결한다.
롯데그룹과 카이스트는 2012년 석·박사 위탁교육을 시작으로 협력을 이어왔으며, 2022년에는 롯데케미칼과 카이스트가 탄소중립연구센터를 설립해 공동연구를 확대했다. 이번 R&D센터는 이러한 협력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거점으로 확장한 것이다.
신 회장은 준공식에서 “R&D센터가 학교와 기업의 경계를 넘어 더 큰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산학협력의 거점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며 “교수진과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롯데그룹이 든든한 동반자로 함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