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이재근 KB금융지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추천하며 든 시대적 배경이다. 회추위는 이재근 부문장이 "은행과 비은행 전반에 대한 탁월한 전문성"을 갖췄다는 점을 낙점 이유로 꼽았다.
회추위는 11일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 양종희 현 회장, 이재근 부문장 등 숏리스트 3인을 상대로 후보별 2시간씩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뒤 최종 투표로 이재근 부문장을 선택했다. 연임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양종희 회장 대신 세대교체를 택한 것이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이재근 KB금융지주 글로벌부문장 겸 WM·SME부문장을 차기 KB금융지주 회장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회추위는 이재근 부문장을 선임한 명분을 비교적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지금 KB금융이 마주한 가장 큰 숙제가 '머니무브' 국면에서의 성장이고, 그 숙제를 풀 이력을 이재근 부문장이 갖췄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종희 회장이 KB금융그룹에 남긴 가장 중요한 변화는 뚜렷한 실적 그 자체보다 'KB금융그룹은 더 이상 은행만의 그룹이 아니다'라는 명제에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 명제를 시황과 무관하게 계속 이어가는 것이 이재근 회장 체제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양종희에게서 물려받는 유산, 'KB는 이제 은행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양종희 회장 체제에서 KB금융그룹이 겪은 변화의 핵심은 이익의 무게중심이 은행에서 비은행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계열사별 순이익에서 비은행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5년 37%에서 올해 상반기 44%로 올라왔다. 반년 만에 7%포인트가 움직인 셈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대형 인수합병 없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KB금융은 경쟁사처럼 비은행 계열사를 새로 사들이기보다 기존 계열사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식을 택했고, 올해는 특히 KB증권에 두 차례에 걸쳐 1조7천억 원을 투입하며 자본시장 사업의 체급을 키우고 있다.
KB금융지주 비은행 강화의 견인차는 바로 '자본시장'이다. KB증권의 상반기 순이익은 7963억 원으로 1년 전의 2.3배로 뛰었고, ROE는 21%까지 올라왔다. 그룹 비이자이익도 상반기에만 33.3% 늘었다.
양종희 회장 체제가 남긴 유산은 실적 자체가 아니라 'KB금융그룹은 더 이상 KB국민은행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회사'라는 명제인 셈이다.
KB금융지주는 이 흐름을 우연이 아니라 전략의 결과로 규정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2025년 실적발표 자료에서 그룹 미래 전략의 두 축을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비즈니스 모델의 본질적 전환'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고객기반·진출시장·사업영역확장'으로 내걸었다.
◆ 은행이라는 '본진'은 정체돼 있다, 전환을 떠받칠 체력의 문제
문제는 전환의 원천인 은행이 예전만큼 이익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의 상반기 순이익은 2조2254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1876억 원)보다 1.7%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룹 순이익이 13.1% 뛰는 동안 은행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이자마진 흐름도 우호적이지 않다. 은행 순이자마진(NIM)은 올해 상반기 누적 1.76%를 기록하면서 2025년 연간 1.74%보다 소폭 상승했다. 다만 분기 기준으로는 1분기 1.77%에서 2분기 1.74%로 3bp 떨어졌다. 금리 환경만으로 은행 이익을 크게 늘리기 어려워지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은행이 여전히 그룹 이익의 56%를 차지하는 만큼, 은행의 이익 창출력이 둔화되면 비은행 확장을 뒷받침할 그룹 전체의 자본여력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대전환을 추진하되 본진은 지켜야 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셈이다.
자본시장 호황에 올라탄 비은행 실적이 시황이 꺾일 때도 유지될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이 부문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상반기 KB증권의 성장은 개인 주식거래대금이 1년 새 크게 늘어난 우호적 환경의 덕을 본 측면이 크다. 시장이 차갑게 식었을 때도 비은행 부문이 그룹의 중심축으로 남을 수 있느냐가 이재근 체제의 KB금융그룹에 내내 따라붙을 질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자본시장 밖의 두 축, 보험과 카드는 '체력을 이익으로 바꾸는' 국면
자본시장을 제외하고 살펴봐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축은 보험과 카드다. 다만 증권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룹의 자본이 새로 흘러 들어가 몸집을 키우는 증권과 달리, 보험과 카드는 이미 갖춘 체력을 실제 이익으로 바꿔내는 것이 관건인 부문이기 때문이다.
KB손해보험은 미래이익의 저수지인 보험계약마진(CSM)을 10조7216억 원까지 쌓았다. CSM은 계약 기간에 걸쳐 상각되면서 이익으로 전환되는, 보험사의 미래이익 체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저수지 자체는 탄탄하게 채워진 셈이다.
다만 그 물이 아직 충분히 흘러나오지는 못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의 상반기 순이익은 478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2% 뒷걸음쳤다. 쌓아둔 미래이익을 당장의 이익으로 전환하는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KB국민카드가 내걸고 있는 성장의 방향 역시 몸집 불리기와는 거리가 있다. KB국민카드는 올해 들어 "자본 효율성 관점의 성장"과 "내실 성장"을 거듭 경영 방향으로 제시해왔다. KB국민카드의 상반기 순이익은 2189억 원으로 20.7% 반등하며 충당금 부담을 덜었지만 자본효율성 지표인 ROE(자기자본이익률)는 7.86%로 여전히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다.
◆ '은행·비은행을 다 아는 회장'이라는 명분, 그리고 남은 시험대
특기할만한 점은 이재근 회장 체제에 남겨진 과제들은 그의 이력이 닿아 있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 부문장은 지주 재무기획부장과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LIG손해보험·현대증권·우리파이낸셜 인수를 주도하며 그룹의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고, 은행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CFO와 영업그룹대표, 은행장을 지냈다. 2025년부터는 지주 부문장으로 글로벌과 WM·SME 부문을 총괄했다.
특히 이 부문장은 2022년 업계 최연소로 KB국민은행장에 올라 재임 3년간 은행 이익 체질을 재설계했고, 이후 KB국민은행이 2025년 사상 최대 순이익으로 리딩뱅크를 탈환할 수 있었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체된 본진, 은행에서 이익을 다시 끌어올리는 일은 그가 은행장 시절 증명한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장은 그가 인수 실무를 주도했던 자리이고, WM과 자산운용은 이 부문장이 지주에서 총괄했던 분야다.
KB금융지주 회추위는 이 부문장의 추천 배경을 두고 "이재근 부문장은 금융산업이 재편되고 머니무브가 본격화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KB금융의 미래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훌륭히 이끌어낼 만한 역량이 있는 CEO 후보"라며 "은행과 비은행 전반에 대한 탁월한 전문성에 더해 재무ㆍ전략ㆍ글로벌 부문 등에 대한 높은 식견과 통찰력을 겸비했으며 은행장과 지주 부문장을 역임하면서 보여준 성과와 경영능력은 그룹의 리더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재근 부문장은 관계법령 등에서 정한 임원 자격요건 심사, 10월2일 회추위와 이사회 추천을 거쳐 11월20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