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정조준하며 연일 녹취록을 공개하던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고 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사진)이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녹취록 짜깁기에 대한 역공을 맞이하면서 비판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과 김 후보자 측은 한 의원이 녹취록의 앞뒤 맥락을 잘라내 김 후보자 발언을 '불법 로비'나 '승인 압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 개각 정국에서 한 의원의 존재감이 높아지는 듯 했지만 '쪽가위'라는 역공을 맞이한 셈이다. '정치검사' 이미지만 굳어졌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9일 여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신약 임상시험 계획 승인 청탁 의혹'을 둘러싼 한동훈 무소속 의원과 민주당의 공방은 녹취 내용 자체를 넘어 '어떤 부분을, 무슨 의도로 잘라서 공개했느냐'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의원을 향해 "조선 제일 검, 조선 제일 쪽가위 이런 것은 조선 제일이라는 것에 집착하게 만든다"며 "(한 의원은) 제일이라고 불러주면 정말 칭찬인 줄 알 것 같다. 조선 불량검, 조선 불량 쪽가위로 해 주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한 의원 문제는 김 후보자 청문회와는 별도의 사건으로 간 것 같다"며 "캐비닛 유출과 증거 조작으로 상징되는 정치 검찰의 패악을 국회로 넘어온 한 의원 스스로가 마지막으로 확인 사살하기 시작한 것"고 덧붙였다.
한 의원은 그동안 김 후보자와 브로커 양모씨 사이의 통화 녹취를 잇달아 공개하며 김 후보자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제넨셀 임상시험 승인 과정에 부적절하게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해 왔다.
국민의힘도 한 의원이 공개한 녹취를 주요 공격 소재로 활용했다. 한 의원의 폭로가 김 후보자에 대한 야권 공세의 핵심 고리로 자리 잡으면서 개각 정국에서 한 의원의 존재감도 한층 커졌다.
하지만 김 후보자 측이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녹취록 전문과 한 의원이 공개한 내용을 비교해보면, 브로커 양씨가 김 후보자에게 식약처의 제넨셀 임상시험 승인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왜 지연되는지 확인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한 의원 공개에선 통째로 사라졌다. 또 김 후보자가 제넨셀 설립자 강씨에게 양씨의 행동을 두고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의를 준 부분 역시 한 의원의 공개본에서는 앞뒤 맥락이 제거됐음을 알 수 있다.
공방의 쟁점도 달라졌다. 김 후보자가 실제로 식약처의 임상시험 승인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를 따지는 문제와 함께, 한 의원이 왜 특정 대목을 중심으로 녹취를 공개했는지, 공개하지 않은 대화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민주당이 ‘쪽가위’라는 표현을 들고 나온 맥락도 한 의원이 전체 대화 가운데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을 골라내 공개함으로써 녹취를 듣는 사람에게 특정한 인상을 심어주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졌다는 비판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신약 로비 의혹의 당사자인 제넨셀 창업자 강모 교수는 이날 CBS라디오 뉴스쇼에 직접 출연해 "제가 보기에도 좀 황당한 내용들이 짜깁기 된 것 같다"며 "전체 내용을 보면 주장하는 내용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강모 교수는 이어 "검찰에서도 어느 부분, 일부분만 지정하면서 읽어보고 거기에 대해서 답을 해라 이러던데 앞뒤 맥락을 전체를 보면 이건 검찰이 주장하는 내용이 아닌 것 같아서 저도 '전체 내용을 다 보겠다' 그래서 다 보고 나서 대답을 했었다"며 "(한 의원의 녹취록 짜깁기) 그것과 마찬가지더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프레임이 한 의원에게 부담스러운 이유는 검사 출신 법무부 장관이라는 이력이 정치적 자산이자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로서의 경험은 각종 의혹을 파고드는 데 강점이지만, 수사자료의 선택적 공개 논란과 결합할 경우 민주당이 주장하는 ‘정치검찰’ 프레임을 강화하는 소재가 될 수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전북도청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도 한 의원이 이번 녹취록 공개를 통해 보여준 행태가 아직까지 윤석열 정권 시절 정치검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공세를 펴고 있다.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명당에서 한 의원의 녹취록 공개 방식을 두고 "찔끔찔끔, 그것도 편집을 해서 국민이나 시청자들의 오해와 의혹을 불러일으키도록 흘리는 것은 전형적인 특수부 검사의 잘못된 행태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한 의원이 정치검찰의 악습 못 버리고 국민을 속인 대가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며 "악의적인 편집·가공을 더하는 방식으로 왜곡과 선동하는 행태가 바로 검찰의 조작 기소 수법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공격에 대해 한 의원은 녹취록를 포함해 자신이 공개한 자료를 검찰에서 받은 바 없다며 검찰을 통해 입수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펼친 김민석 민주당 대표 등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화 전체를 들어도 '민원 전달'이 아니라 '청탁'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검찰로부터 자료 비슷한 것도 받은 적 없으니 김민석 당대표의 근거없는 거짓말에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며 "앞으로 김민석 같은 뇌피셜 거짓말 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팩트로 안되니 가위질이니 뭐니 헛소리로 선동하니, 통화 전체를 봐라"며 "불법적인 오빠 청탁이란 것이 더욱 명확하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보수 야권의 대표적 대선 주자라는 평가를 받는 한 의원이 이번 공방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아질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김 후보자 관련 의혹을 추궁하던 한 의원이 '녹취록 짜깁기'라는 주장에 반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한 의원을 두고 "서초동 편집국장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었겠나"라며 "마담정치 하는 자나, 그걸 편집해 폭로 하는 자나 도찐개찐이로구나. 정치가 저렇게 저열하고 야비해서야 원 내참"이라고 꼬집었다.
장성철 공론센터소장은 지난 7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한 의원에게 지도자의 모습이 안 보인다"라며 "한 의원에게 기대하는 건 검사가 아니라 정치를 하는 정치인인데 이번에 상당히 이미지 손해가 난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