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석 롯데백화점 대표가 쿠팡이츠를 통해 퀵커머스 실험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출점만으로 매출을 늘리기 어려워진 백화점의 고민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요 상권의 점포망이 포화된 데다 신규 출점에는 막대한 비용이 따른다. 기존 점포가 체험형 콘텐츠와 명품을 중심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소비가 특정 상품군에 쏠리면서 전체 매출을 고르게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백화점마다 기존 점포를 체험·외식·여가를 아우르는 복합공간으로 재단장하면서 공간을 통한 차별화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고민은 백화점만의 것이 아니다. 편의점·슈퍼마켓·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일찌감치 기존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활용하는 퀵커머스에 눈을 돌렸다. 별도의 출점이나 대규모 투자 없이 기존 점포의 상품으로 온라인 매출을 추가할 수 있어서다.
롯데백화점이 오프라인 집객을 넘어 점포 밖 새로운 판매 방식도 시험하고 있다. 롯데에비뉴엘 잠실과 롯데월드몰 전경. ⓒ연합뉴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최근 쿠팡이츠와 손잡고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에 백화점 전용관 열었다. 지난 8일부터 청량리점과 관악점이 퀵커머스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우선 5개월 동안 두 점포가 시범적으로 운영한다. 대상 점포와 기간을 한정한 만큼 백화점 상품의 퀵커머스 수요를 확인하는 테스트 성격이 강하다.
이번 시도는 백화점의 고객 유입 전략에 새로운 판매 방식을 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편의점·슈퍼마켓·대형마트 등은 배달 앱을 활용해 매장 상품을 즉시 배송해왔지만, 백화점은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집객에 집중해왔다. 롯데백화점 역시 팝업스토어와 전시, 체험형 매장을 확대하며 고객이 새로운 경험하기 위해 매장을 찾도록 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6월 크리에이터 굿즈와 식음료를 결합한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니치 향수 특화 존에서는 시향과 퍼스널 프래그런스 컨설팅을 제공했다. 에비뉴엘 잠실점에서는 미디어아트와 회화, 아로마 요가를 결합한 몰입형 전시도 운영했다. 지난 달에는 포켓몬과 협업한 ‘롯데타운 2026 서머마켓’을 열어 대형 미디어월과 체험 공간, 협업 F&B와 굿즈를 결합한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다만 백화점의 집객 경쟁만으로는 기존 시장에서 매출을 더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새로운 점포를 열지 않는 한 기존 고객과 수요를 놓고 경쟁하는 ‘파이 나누기’에 머물 수 있어서다. 백화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팝업스토어와 전시, 외식·여가시설 등을 강화하며 단순 쇼핑 공간에서 체류형 복합공간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사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점포를 재단장하면서 체험과 공간만으로 차별화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기존 점포의 매출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소비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백화점 소비가 명품 등 고가 상품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백화점 매출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가 차지한 비중은 40.0%로 1년 전보다 3.9%포인트 상승했다. 명품 매출 증가율도 37.3%로 전체 백화점 매출 증가율(24.5%)을 웃돌았다.
백화점이 명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식품·패션·리빙 등 다양한 상품군을 선보이고 있지만, 모든 카테고리에서 고른 소비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결국 고객의 방문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백화점이 보유한 상품 전체에서 추가 매출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포를 늘려 매출을 키우는 기존 성장 방식에도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백화점 출점 경쟁이 사실상 포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신규 점포를 통한 외형 확장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백화점 한 곳을 새로 여는 데는 부동산 확보부터 시설 투자까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이미 주요 상권에 점포를 확보한 만큼 새로운 출점처를 찾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정현석 대표의 이번 실험을 통해 기존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활용해 추가 매출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된다면, 백화점 업계의 경쟁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은 체험과 체류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굳이 백화점을 직접 찾을 필요가 없거나 즉시 구매 수요가 높은 상품은 외부 플랫폼을 통해 매장 밖 고객에게 배송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백화점 간 경쟁도 더 많은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데서 벗어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구매 수요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옮겨갈 수 있다.
물론 퀵커머스를 통한 매출이 오프라인 판매의 마진율을 그대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수익성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배달 앱을 통한 판매는 매장에서 고객에게 직접 판매할 때보다 플랫폼 수수료와 배달비, 주문 상품을 선별·포장하는 비용이 추가돼 건당 마진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퀵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면 백화점이 감수해야 할 부담도 커질 수 있다. 플랫폼이 수수료율이나 배달비, 포장비, 할인·프로모션 비용 등의 조건을 주도할 경우, 백화점의 수익성이 플랫폼 정책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백화점이 일반 유통업체와 같은 수준으로 플랫폼에 종속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백화점은 자체 브랜드와 상품 구색, 오프라인 매장이 가진 인지도와 집객력을 바탕으로 플랫폼에도 유인력을 제공할 수 있어서다. 특히 소비자가 특정 백화점의 델리나 식품, 인기 브랜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배달앱을 찾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백화점 역시 플랫폼과의 협상에서 일정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플랫폼 입장에서도 차별화된 백화점 상품을 확보하는 것이 고객 유입과 주문 확대에 도움이 되는 만큼, 백화점이 일방적으로 수수료와 비용을 부담하는 관계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