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찰이 나이절 페라지 대표가 이끄는 영국개혁당(Reform UK)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면서, 반이민 정서를 발판으로 급성장한 이 정당의 '돌풍'이 중대 고비를 맞았다.
영국개혁당은 불법행위를 전면 부인하지만, 수사 장기화와 핵심참모 이탈은 페라지 대표의 '기성 정치와 다른 깨끗한 대안'이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6년 9월9일 영국 의회 앞에 영국개혁당 정치자금 의혹을 제기하는 시위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런던경찰청은 최근 영국개혁당의 정치자금과 여론조사 비용 관련 신고들을 검토한 결과 수사가 필요한 잠재적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로이터통신이 9일(현지시각) 전했다.
영국에서도 ‘여론조사 대납’ 의혹
이번 사건은 영국 채널4 뉴스가 3일 보도한 잠입취재 결과를 통해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채널4 뉴스의 보도 영상에는 영국개혁당의 정책책임자 제임스 오르와 페라지의 측근 댄 주크스가 미국 사업가로 위장한 취재진과 만나, 영국개혁당이 의뢰한 여론조사 3건의 비용을 미국 기업이 내는 방안을 논의하는 듯한 장면이 담겼다.
여기서 논의된 여론조사 비용은 3만 파운드(약 5500만 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치자금법(PPERA)은 현금만이 아니라 무상 또는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제공된 서비스도 500파운드(약 90만 원) 이상이면 정치기부로 본다.
영국 정당은 영국 선거인명부 등록자나 영국에서 실제 영업하는 영국 법인 등 ‘허용된 기부자’에게서만 정치자금을 기부 받을 수 있다. 즉 해외 기업이 영국 정당을 위해 여론조사 비용을 대신 냈다면, 돈을 직접 건네지 않았더라도 불법 기부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영국개혁당은 자신들이 ‘함정’에 걸렸을 뿐이며 위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국개혁당은 오르와 주크스를 직무에서 물러나게 했고, 영국 경찰은 이번 사안을 이미 진행 중이던 영국개혁당 기부금 수사에 통합했다.
페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도 2024년 총선 전 암호화폐 사업가 크리스토퍼 하본에게서 받은 500만 파운드(약 91억 원)의 미신고 의혹으로 의회 기준감독관 조사를 받고 있다. 다만 이들 의혹은 모두 조사단계이며, 당사자들의 법적 책임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나이절 페라지 영국개혁당 대표. ⓒ EPA=연합뉴스
'페라지 돌풍'의 중대 고비
이번 사태의 파장은 단순한 회계 논란보다 클 수 있다.
영국개혁당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이민, 생활비, 공공서비스 악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유권자 불만을 흡수하며 지지율 선두권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번 의혹보도 직후 유고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영국개혁당과 노동당이 각각 23%로 동률이었고, 보수당은 20%까지 따라붙었다.
정치자금 투명성은 특히 페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에게 민감한 문제다.
그는 브렉시트(영국의 탈유럽연합)와 반이민 의제를 앞세워 영국 정치권의 특권과 부패를 비판해 왔다.
따라서 외국 정치자금 수수 의혹은 단순히 규정을 어겼느냐를 넘어서, '주권회복'을 내세운 브렉시트 운동의 대표 주자가 외국 영향력에 문을 열었다는 문제로 번진다.
다만 영국개혁당의 지지층이 당장 급격히 이탈할지는 불확실하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프레시워터 스트래티지가 9월 4~6일 만 18세 이상 유권자 124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2.8%포인트)에서 응답자의 62%는 이번 영국개혁당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 정당 운영 및 재정에 실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답했고, 41%는 영국개혁당 지지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밝혔다.
반면 기존 영국개혁당 지지자 가운데 69%는 의혹이 과장됐다고 봤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영국 경찰의 수사가 페라지 영국개혁당 대표의 핵심 지지층을 곧바로 무너뜨리기보다, 중도층과 부동층을 끌어들이는 확장전략과 보수당 표 잠식에 제약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