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는 앞으로 사고에 따른 처벌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운전대를 잡을 능력이 있는지까지 평가받게 될 전망이다.
특히 사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령운전자의 운전능력을 점검하는 장치가 마련되면서 교통사고 재발을 막는 데도 일정 부분 방지턱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2025년 전체 교통사고는 19만3889건 일어났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4만5873건(23.6%)에 이르렀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경찰청은 최근 '중대 교통사고 발생 운전자 교통안전교육 신설'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이 이를 통해 중대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교통안전교육을 실시한 뒤 실제 운전 능력을 재평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평가 결과에 따라 면허 반납이나 수시적성검사를 받도록 하거나, 운전 조건을 제한한 조건부 면허를 부여하거나 면허를 취소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된다.
현재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다시 평가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운전면허 취소·정지도 주로 벌점에 따라 이뤄진다. 1년간 누적 벌점이 121점 이상이면 면허가 취소되고, 40점 이상이면 면허가 정지된다. 사고 피해가 크더라도 벌점 기준에 미치지 않으면 운전을 계속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과실에 의한 사망사고의 경우 벌점은 90점으로, 면허 취소 기준인 121점에는 미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해당 운전자는 90일간 면허가 정지된 뒤 다시 운전할 수 있다.
사고에 따른 처벌과 별개로 사고 이후에도 해당 운전자가 안전하게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 역시 사고 책임을 묻는 것과 운전 능력을 확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만큼, 중대 사고 이후 운전자의 안전 운전 가능 여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문제는 고령운전자 사고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인지·운동 기능 저하로 차량 조작이나 돌발 상황 대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행 벌점과 면허 갱신 제도만으로는 사고 이후 운전자의 실제 운전 능력을 체계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국내에서는 75세 이상 운전자가 3년마다 면허를 갱신하면서 적성검사와 교통안전교육을 받는 것으로 이 같은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다만 해당 검사와 교육에서는 실제 차량을 이용해 운전 기능을 확인하는 검사가 아닌 간단한 인지능력과 반사신경을 테스트 하는 것이 전부다.
실제 최근 고령운전자 사고는 전체 교통사고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2025년 전체 교통사고는 19만3889건으로, 2024년 19만6349건보다 2460건(1.3%) 감소했다. 반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운전자인 교통사고는 같은 기간 4만2369건에서 4만5873건으로 3504건(8.3%) 증가했다.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감소했지만 고령운전자 사고는 오히려 증가한 셈이다.
고령운전자 사고는 사고 건수가 늘어날 뿐 아니라 사망자 숫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75세 이상에서는 차량 조작 미숙으로 인한 사망사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령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사고 이후 운전 능력을 별도로 확인하는 제도에 대한 필요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연령에 따른 교통사고 위험은 대형사고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정보관리시스템의 2015~2022년 집계에 따르면 1건의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3명 이상 발생하거나 부상자가 20명 이상 발생한 대형사고 건수 역시 20대 미만 10건, 20대 45건, 30대 40건, 40대 82건, 50대 105건, 60대 이상 106건으로 집계됐다.
대체로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대형사고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다만 승용차 사고만 놓고 보면 60대 이상과 20대에서 모두 높은 수치를 보이는 U자형 양상이 나타나 연령 외에도 운전 경험이나 차량 이용 특성 등 여러 요인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이번 연구용역을 통해 제도의 구체적인 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대 교통사고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부터 교육 내용과 운전 능력 평가 방법, 평가 결과에 따른 면허 처분 수위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한다.
이처럼 이번 제도는 중대사고를 낸 고령운전자의 실제 운전 능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보완책으로 기대를 모은다. 사고 이후 운전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확인된 고령운전자에게 면허 반납이나 운전 조건 제한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면,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는 데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독일은 중대한 교통법규 위반 시 운전적성검사(MPU)를 거쳐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 호주 등도 운전 적합성에 따라 면허를 제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