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군사적 기여'를 거듭 압박하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프랑스는 영국과 함께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과 별도로 상선 보호와 기뢰 제거 등을 맡는 '방어적' 다국적 임무 수행을 주도하려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영국·프랑스 주도 다국적 임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크롱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방어적 군사적 기여를 통해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을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왼쪽)가 6일(현지시각) 프랑스 니스 꼴롱브 도르에서 열린 5대륙 창작자들과의 만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7일(현지시각)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국제 영화·영상 정상회의인 '뤼미에르 서밋'을 공동 주재한 뒤 파리로 이동해 국빈 방문 일정을 이어간다. 8일에는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단독 오찬을 가진 뒤 정상회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4월 한불 정상회담에서도 두 정상은 호르무즈 해협 내 안전한 해상수송로 확보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 바 있어 이번 회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도 한불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의 군사적 참여를 재차 압박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6일 미국의소리(VOA)에 한국이 중동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 가운데 하나라며 "한국이 중동 지역에 자원을 투입하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 관계자도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나서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은 한국이 어떤 전력을 어느 정도 규모로 투입해야 한다는 구체적 요구는 공개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추진하는 다국적 임무는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에 동참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두 나라는 4월17일 프랑스 파리에서 51개국이 참여한 호르무즈 해협 국제정상회의를 공동 주재한 뒤 상선 보호와 기뢰 제거 등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적이고 엄격히 방어적인' 다국적 임무를 구성하기로 했다. 미국이 수행하는 군사작전과 분리해 운용한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한국은 당시 공동성명에 참여했고, 5월12일 영국과 프랑스가 38개국 국방장관과 대표들을 모아 연 회의에서도 다국적 임무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표명했다.
영·프 주도 임무는 현재 벌어지는 대이란 전투에 직접 뛰어드는 방식이 아니다. 4월 공동성명에는 '지속 가능한 휴전'이 이뤄지고 여건이 허락할 때 임무를 시작한다고 명시됐고, 5월에도 작전을 개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을 때만 임무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상선 보호와 기뢰 제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해군 P-8A 해상초계기 사진. ⓒ연합뉴스
우리 정부도 전투 병력보다는 비전투 임무를 중심으로 파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P-8A 해상초계기와 폭발물처리반(EOD) 등이 유력한 파견 전력으로 거론되며, 당초 검토 대상이던 군수지원함은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서도 비전투 임무에 한정한 파병이라면 현실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란이 한국군 파병을 전쟁 참여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비전투 병과라고 하면 어느 정도 파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여권 내에서도 파병을 둘러싼 의견은 여전히 엇갈린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기헌 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란 정부가 비전투병 파병조차 참전으로 간주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한 명을 보내더라도 무장한 군인이 파견되는 것은 전쟁 관여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왼쪽)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호르무즈 파병안과 관련해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신장식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의원회의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단호히 반대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파병 요구는)동맹국 간이라도 도를 한참 넘어선 망언과 무례"라고 비판했다.
신 대표는 이어 "이런데도 파병하면 국제사회에서 '만만한 나라'로 찍힐 것"이라며 "이란에 대한민국은 전쟁 당사국이 되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이 정도 압박은 당당하게 거절해도 될 만한 국가"라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이 영국과 프랑스 방식을 택한다면 미국의 요구를 완전히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대이란 공격작전에 직접 가담하는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과 이란의 경고 사이에서 우리 장병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매력적인 절충안인 셈이다.
문제는 이 정도의 기여를 미국이 받아들일지 여부다. 이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과 이번 회담을 통해 영·프 주도 임무에서 한국이 맡을 구체적 역할과 참여 방식을 합의했을 때,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직 알기 어렵다. 추가로 미국과 외교적 줄다리기를 필요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