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의 원료의약품(API)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이 회사의 새로운 현금창출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이후 꾸준히 수주가 쌓이면서 2028년 상반기까지 공장을 가동할 물량을 확보했고, 실적에도 단단한 기반이 돼 가고 있다.
하지만 특정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점, 그리고 현재 이뤄지고 있는 설비투자가 마무리되는 시점 이후 적용될 수주가 아직 부족한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앞으로 조욱제 현 대표이사 사장과 새로 선임돼 내년 3월부터 일할 대표이사는 추가 수주와 고객 다변화를 꾀하면서 API CDMO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유한양행의 API CDMO 사업은 유한양행 해외사업부가 글로벌 수주와 기획을 총괄하고, 100% 자회사인 유한화학의 안산·화성 공장에서 저분자 화합물 API를 생산하는 이원화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 2024년 이후 '원료의약품 CDMO' 사업 본격 확대
4일 제약업계 움직임을 종합하면, 유한양행은 최근 글로벌 제약사와 API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계약 규모는 9542만 달러(1311억 원), 계약기간은 2026년 9월1일부터 2028년 5월31일까지다. 다만 고객사 이름은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계약에 따라 2024년 이후 유한양행의 원료의약품(API) 수주 규모는 약 7420억 원(최근 계약 환율 1373.6원 기준)에 이르렀다. 현재 수주 잔고만 약 6천억 원에 달한다.
유한양행 API CDMO 수주 내역.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유한양행은 과거에도 API 사업을 영위했지만 2018년 이후 대형 API 공급계약 공시가 없었다. 하지만 2024년부터 다시 수주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오랜 기간 돈독한 관계를 쌓아온 파트너인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제품 포트폴리오가 간염에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중심으로 이동한 게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특히 길리어드의 HIV 사업부문에서 기존 치료제뿐 아니라 장기지속형 주사제(레나카파비르 : 제품명 예즈투고/선렌카) 등 새로운 제품의 상업화가 본격화된 것이 계기가 됐다.
길리어드는 1987년 설립된 미국의 제약·바이오 기업이다.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질환, 특히 항바이러스 치료제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B형·C형 간염 등 간질환 치료제와 HIV/AIDS 치료제 분야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유한양행은 과거 길리어드의 한국지사(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가 자리 잡기 전 ‘비리어드’ 등 간염 치료제의 국내 총판을 맡은 바 있다.
특히 연 2회 투여하는 HIV 예방약 ‘예즈투고’가 202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아 상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유한양행의 API 생산도 임상·허가 단계의 생산에서 상업화 물량용 생산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유한양행은 길리어드의 물량을 소화하고자 유한화학의 기존 안산공장과 화성공장 HA동에 더해, 2023년 11월 HB동 베이 원(Bay 1), 2025년 4월 HB동 베이 투(Bay 2)를 증설하면서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했다. 아울러 2024년 해외사업부 아래 CDMO 사업실을 신설하고 API CDMO 업무를 관장하도록 했다.
유한화학의 매출액은 2023년 1690억 원에서 2024년 2123억 원을 거쳐 2025년 2897억 원으로 늘어났다.
유한양행은 추가 생산시설인 HC동 증설도 추진 중이다. 1026억 원을 투자해 2027년 하반기 완공, 2028년 상반기 상업생산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동 시 총 생산능력은 현 99만5천 리터에서 128만7천 리터로 늘어난다.
◆ 원료의약품 CDMO 사업의 '지속가능성'은 향후 과제
조욱제 대표이사 사장 등 유한양행 경영진들은 API CDMO 사업을 안정적인 현금창출원으로 육성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한양행은 오랜 기간 신약 파이프라인에서 새로운 기술수출 계약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렉라자(존슨앤존슨), 2019년 지방간염(MASH) 치료제 2건(길리어드·베링거인겔하임, 두 건 모두 이후 권리반환), 2020년 기능성 위장관 질환 치료제(프로세사) 등의 기술수출이 성사된 이후 6년간 신규 기술수출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비록 렉라자의 라이선스 수익(마일스톤과 로열티)이 수익성에 보탬이 되고 있지만, 렉라자 이후 회사의 중장기적 성장동력 확보에 밑거름이 될 새로운 수익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API CDMO 사업이 안정적으로 가동된다면 신약 파이프라인 쪽에 속도를 붙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유한양행 API CDMO 사업에서는 △특정 고객사(길리어드)에 수주가 집중돼 있다는 점 △2028년 HC동 완공 후 늘어난 생산능력을 책임질 신규 수주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 등 두 가지 문제점이 주로 지적되고 있다.
앞으로 길리어드 외에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으로부터 신규 수주를 확보해 고객을 다변화하고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는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2026년 5월 미국 바이오기업 브릿지바이오와 맺은 심근병증 치료제 API 공급계약은 길리어드에 집중됐던 고객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저분자 화합물 대량생산 중심의 API CDMO에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가 높은 고난도 신약용·상업용 API, 핵산·펩타이드 등 차세대 모달리티의 원료 CDMO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