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장애인에게 자막을 제공하지 않은 영화관에 '차별'이라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이에 더해 장애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판결을 직접 이해할 수 있도록 수어통역을 지원하고, 대법원 최초로 ‘이지리드(Easy-Read) 판결서’도 함께 내놨다.
3일 대법원이 제공한 이지리드 판결문 내용이다. ⓒ대법원 제공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3일 시각장애인 김아무개씨 등 시청각장애인 4명이 CJ CGV·롯데컬처웍스·메가박스중앙 등 국내 멀티플렉스 3사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영화관이 장애인에게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문제는 ‘차별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였다.
쟁점은 ‘3%’였다. 앞서 서울고법은 영화관이 장애인에게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은 것을 차별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좌석이 300석을 초과하는 대형 상영관에서 전체 상영 횟수의 3%에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도록 했다. 영화가 100번 상영된다면 장애인이 자막이나 화면해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는 3번으로 한정한 셈이다. 대법원은 바로 이 지점을 다시 따져야 한다고 봤다.
3일 대법원이 공개한 '이지리드 판결문'의 일부. ⓒ대법원 제공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려면 비용이 들고, 영화관 역시 자유롭게 영업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즐길 권리가 있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어느 한쪽만 볼 것이 아니라 두 권리를 함께 저울에 올려놓고 구체적인 사정을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특히 서울고법이 영화관의 비용 부담에 지나치게 무게를 뒀다고 바라봤다. 영화관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는지, 자막과 화면해설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충분히 살펴봐야 했다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즐길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영화관의 부담을 줄일 다른 방법이 있는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결국 대법원은 이런 사정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자막과 화면해설 제공 범위를 3%로 정한 원심 판단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서울고법은 장애인의 영화 관람권과 영화관의 부담을 다시 구체적으로 따져 새로운 결론을 내려야 한다.
3일 대법원이 제공한 이지리드 판결문 내용이다. ⓒ대법원 제공
이와 별도로 대법원은 선고 과정에서 청각장애인 및 청각·언어장애인인 원고들을 위해 수어통역을 지원했다. 판결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한 ‘이지리드(Easy-Read) 판결서’도 원고들에게 제공했다.
대법원에서 이지리드 판결서가 제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판결의 요지만 간략하게 설명하거나 별도의 안내문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최종심 판결서 자체에 이지리드 방식을 적용해 내용을 작성·반영했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장애인들이 ‘영화를 볼 권리’를 판단한 법원이 ‘판결을 이해할 권리’까지 고민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결론만큼이나 판결을 전달한 방식에도 의미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