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으로 달아오른 도시에서 가로수는 그늘을 만들고 잎으로 열을 식히며 시민들의 더위를 덜어주는 ‘도시의 에어컨’ 역할을 하고 있다.
가로수는 우리네 거리 풍경을 중요한 주인공인 만큼 예쁘면 더울 좋다. 그런데 '외모'를 위해 가로수의 그늘을 줄인다면 문제는 조금 복잡해진다.
충북 청주시청 제1임시청사 인근 도로변 약 350m 구간에 조성된 ‘하트나무 가로수길’. 은행나무 41그루를 하트 모양으로 정비했다. ⓒ청주시청
충북 청주시는 24일 ‘하트나무 가로수길’이 산림청에서 실시한 전국 가로수 관리 우수사례 평가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앞서 청주시는 시청 제1임시청사 인근 약 350m 구간의 은행나무 41그루를 하트 모양으로 다듬은 ‘하트나무 가로수길’을 조성했다.
하트 모양의 나무들이 줄지어 선 모습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며 해당 가로수길은 시민들이 찾는 도심 명소가 됐다. 다만 하트 모양을 유지하기 위한 반복적인 가지치기가 나무의 생장과 가지·잎이 넓게 펼쳐지는 수관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뭇잎과 가지는 햇빛을 가려 그늘을 만들고, 잎의 증산작용을 통해 주변의 열을 낮추는 가로수의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 이렇게 모양을 내면 수관이 줄어들고 그만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그늘도 줄어든다.
가로수의 냉각 효과는 나무의 존재뿐 아니라 그 구조와 규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2015년 한국조경학회지에 발표된 서울시립대의 '서울 도심 가로수 및 가로녹지의 기온 저감 효과와 기능 향상 연구'를 보면, 큰 나무인 교목과 키 작은 관목이 함께 자라는 다층 구조의 녹지가 단층 구조보다 기온 저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큰 나무를 한 줄로 심고 주변에 관목을 함께 조성한 공간에서는 양버즘나무의 보도·차도 간 평균 기온 차이가 2.57도로 가장 컸고, 은행나무 2.00도, 느티나무 1.84도, 소나무 1.35도 순이었다.
또 서울시립대의 '가로수 그늘과 건물 그늘의 폭염저감 효과 평가'연구에서는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 가로수 그늘의 평균 기온 저감 효과가 1.61도, 35도 이상인 날에는 2.23도로 나타났다.
8월25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에 은행나무 낙과수집기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가로수도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나무가 달라졌다. 한때 서울 거리를 뒤덮었던 양버즘나무는 은행나무에 자리를 내줬고, 이후에는 하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와 왕벚나무가 경관을 앞세워 빠르게 늘었다.
서울에서는 오래된 은행나무를 다른 수종으로 바꾸는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환경연합이 시민 24명과 함께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연차별 가로수 계획’을 모니터링한 결과, 2026년 한 해 동안 수종교체 사업으로 사라지는 은행나무는 최소 792그루로 집계됐다.
수종교체 사유로는 ‘민원 해결’, ‘보행 경관 개선’, ‘시민 불편 해소’ 등이 제시됐다. 서울환경연합은 수백 그루의 가로수를 제거하는 사업임에도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은행나무 열매 냄새 등 시민 불편을 이유로 나무를 제거하기보다 다른 관리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5월 동대문구가 무학로 약 1㎞ 구간의 은행나무 61그루 제거를 추진하자, 한 주민이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의견을 물었고 응답자 83명 가운데 61명이 제거에 반대하거나 열매 수거·가지치기 등 대안적 관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해민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아무리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도 도시의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품는 가치는 단기간의 불편함을 훨씬 뛰어넘는다”며 “원칙과 데이터, 객관적인 위험성 평가를 바탕으로 나무와 담당 공무원을 보호하고 다른 주민들의 의견도 함께 듣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4년 4월19일 대구 남구 대명동 한 도로에 초여름 시작을 알리는 이팝나무꽃이 피어있다. ⓒ연합뉴스
정부 역시 나무를 새것으로 바꾸기 위해 기존 가로수를 제거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3년 3월 ‘도시 내 녹지관리 개선방안’을 통해 “단순히 수종 갱신을 목적으로 수목을 제거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로수가 충분한 수관을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수십 년 자란 나무가 만들어내는 넓은 그늘과 녹음을 어린 나무 몇 그루가 단기간에 대신하기도 어렵다. 폭염을 피해 걸을 수 있는 ‘그늘길’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가로수를 얼마나 예쁘게 다듬느냐보다 얼마나 넓고 오래 그늘을 제공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