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에게 단단히 찍혔다. 둥지를 관찰하러 다니다 보니 까치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원영 박사가 찍은 까치 둥지 안에 모습(왼쪽), 이원영 박사가 남극에서 만난 펭귄. ⓒ이원영 엑스 계정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까치의 행동을 연구하던 생태학자였고, 까치에게 공격받은 경험은 오히려 그의 첫 논문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남극에서 펭귄을 연구하고 있다.
생태학 박사인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5일 엑스(X, 옛 트위터)에 과거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까치를 연구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원영 박사는 대학교 학부 시절 서울대에서 최재천 교수(현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사사했다. 이 박사는 이후 최 교수가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 넘게 이어온 까치 연구에 합류했다. 대학원 시절 서울대 관악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까치의 양육 행동을 관찰한 것이 그의 까치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이 25일 엑스 계정에 글을 올렸다. ⓒ이원영 엑스 계정
문제는 연구 대상이 거꾸로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까치에게 괴롭힘당했던 썰이 다시 회자되는 것 같다"며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대학원 시절 동안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사는 까치의 양육 행동을 연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둥지에 자주 올라갔다. 그랬더니 나중엔 근처만 지나가도 까치 부모들이 저를 알아보고 공격했다. 이게 제 첫 논문"이라고 밝혔다.
이 경험은 실제 논문으로 이어졌다. 이 박사와 연구진은 2011년 동물의 인지 능력을 다루는 국제학술지 ‘애니멀 코그니션(Animal Cognition)에 'Wild Birds Recognize Individual Humans: Experiments on Magpies, Pica pica'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 그대로 '야생 조류가 개별 인간을 알아볼 수 있는가'를 까치를 통해 확인한 연구다. 이 논문의 공동저자에는 최재천 교수도 이름을 올렸다.
연구진은 까치 둥지에 반복해서 접근했던 사람과 둥지에 접근하지 않았던 사람을 구분해 까치들에게 보여줬다. 그 결과 까치들은 둥지에 접근했던 사람에게 선택적으로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든 사람을 경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둥지를 위협했던 특정 인간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구별한 것이다.
이원영 박사는 "야생 조류가 인간을 개체 수준에서 구분할 정도의 인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꽤 최근에서야 밝혀졌다"며 "까치에게 공격당하면 좀 아프기도 했지만, 솔직히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담담히 받아들였다. 까치 부모가 봤을 땐 아주 나쁜 인간이었을 거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그렇게 나쁜 인간 개체를 기억해내는 건 꽤나 수준 높은 인지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까치 인지를 연구할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연구자에게는 공격도 데이터가 됐다. 까치에게는 자신들의 둥지를 위협하는 '나쁜 인간'이었지만, 이 박사에게는 자신을 기억하고 구분하는 까치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연구 기회였던 셈이다.
시간이 흘렀다. 까치에게 쫓기던 연구자는 이제 남극에서 펭귄을 연구하고 있다.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원영 박사가 22일 엑스 계정에 펭귄 영상과 함께 글을 올렸다. ⓒ이원영 엑스 계정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원영 박사가 지난 22일 야외생물학자의 이야기를 담은 글과 함께 영상을 올렸다. 이원영 엑스 계정
이 박사는 지난 22일 엑스 계정에 펭귄 영상을 올리며 "한국에 돌아온 지 거의 반 년이 지난 남극 영상들을 꺼내어 보고 있다"며 "내 힐링 타임"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날은 장갑을 떨어뜨려서 주우려 했는데, 펭귄들이 장갑을 물다가 나한테 가까이 오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관악캠퍼스에서는 까치가 그를 기억했고, 남극에서는 펭귄이 그의 장갑에 관심을 보였다. 까치에게 쫓기던 대학원생은 2015년부터 극지연구소에서 남극 생물을 연구하며, 또 다른 동물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