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북미 배터리 생산능력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그동안 경쟁사와 비교해 완급 조절에 집중했던 투자 기조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성장에 대응하는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최 사장이 과거와 달리 발 빠르게 생산능력 확충에 나설 수 있는 데는 10조 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보유 지분이 든든한 재원으로 자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 사장은 하반기 대규모 일감을 더욱 쌓게 된다면 첫 단독 공장 확보라는 승부수와 함께 실적 개선 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GM과 합작법인 시너지셀즈(SynergyCells)를 단독 공장으로 전환하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시장 대응력을 강화한다. 사진은 최 사장이 3월18일 서울 강남구 엘리에나 호텔에서 열린 삼성SDI 제56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삼성SDI
8월13일 배터리업계와 증권업계 전망을 종합하면 2026년 북미 ESS 배터리 시장 성장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상반기에 이미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는데 계절적 특성을 고려하면 하반기 들어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배터리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상반기 북미 ESS 배터리 출하량은 76GWh(기가와트시)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83% 늘었다. 같은 기간 성장률이 중국의 49%, 유럽의 74%와 비교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를 기반으로 연간 출하량은 상반기 물량의 2배가량인 150GWh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원석 iM증권 연구원은 8월13일 이차전지 시장분석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ESS 배터리 출하는 하반기에 집중됐다”며 “계절성을 고려하면 2026년 북미 ESS 배터리 출하량은 150GWh를 크게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2025년 북미 ESS 배터리 출하량은 88GWh로 2024년보다 12% 증가했는데 2026년에는 출하량 증가율이 최소 70% 이상으로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이는 미국의 빅테크를 중심으로 현지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북미에 첫 단독 생산거점을 확보해 ESS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장하는 길을 찾은 것도 이런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SDI는 11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앞으로 GM의 차세대 전기차 모델에 탑재할 각형 배터리 제품을 공동선행 개발하기로 약속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보다 더 주목을 받은 것은 2024년부터 GM과 이어온 미국 합작법인 시너지셀즈(SynergyCells) 공장 건설의 동맹관계를 마무리한 것이다.
삼성SDI는 2024년부터 미국 인디애나주 뉴칼라일에 GM과 모두 35억 달러(약 5조 원)를 투자하는 최대 연산 36GWh 규모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고 있는데 이번 결정으로 GM이 보유한 지분 49.99%를 모두 인수해 시너지셀즈를 북미 첫 단독공장으로 품게 됐다. 최 사장은 이 공장에 ESS 배터리 생산라인도 함께 구축해 북미 배터리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기존에 삼성SDI가 생산능력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경쟁사와 비교해 보수적이었던 기조에서 최 사장이 변화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SDI는 202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했던 북미 중심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거점 확대 경쟁에서 가장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배터리-완성차업체 사이 합작법인 설립 결정 시점을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이 2019년 12월, SK이노베이션이 2021년 5월인 것과 비교해 삼성SDI는 가장 늦은 2021년 10월에 스텔란티스와 손을 잡으며 합작 투자에 뛰어들었다. 또 당시는 이미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미국에 단독 공장을 두거나 시운전을 하던 때였다.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3사 가운데 유일하게 글로벌 배터리 생산능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공장 신·증설에 완급을 조절해 왔다. 무리한 대규모 투자보다는 ‘질적 성장’을 열쇳말로 보수적 경영을 해온 것이다.
다만 최 사장의 이번 결정은 삼성SDI가 추가 증설에 관해 투자자들과 소통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발 빠른 움직임이다.
삼성SDI는 7월30일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ESS 배터리의 생산능력 확대 계획을 묻는 질문에 “현재 추가 생산능력 확보 방안을 내부 검토하고 있다”며 “향후 구체화하는 시점에 시장과 소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보름여 만에 곧바로 북미 첫 단독공장 확보를 발표하고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최 사장이 모두 5조 원가량이 투자되는 시너지셀즈 공장 건설을 삼성SDI 홀로 진행하기로 결단할 수 있었던 데는 투자 리스크가 감소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과거와 다르게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보험’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삼성SDI는 2월19일 이사회 보고를 시작으로 2026년 안에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2%를 유동화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당시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 계획 공시 이후 증권업계에서는 삼성SDI가 지분을 전량 현금화하면 최대 11조 원 안팎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시너지셀즈 투자에 투입되는 전체 5조 원, 2026년 1분기 말 삼성SDI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1조7377억 원을 크게 웃도는 현금을 단번에 확보하는 것이다.
ESS 배터리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삼성SDI와 북미 전기차 수요 감소에 따라 배터리 확보를 줄이려는 GM의 수요가 맞아떨어진 북미 첫 단독공장 전환 결정을 내리는 데 최 사장의 부담이 한층 적어진 셈이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8월12일 삼성SDI와 GM 합작투자 종료 관련 보고서에서 “이 공장의 투자 규모는 5조 원 이상으로 추정돼 앞으로 삼성SDI의 투자금액은 상향될 수 있다”며 “그러나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일부 매각은 3분기 안에 완료될 것으로 보여 투자재원 우려는 없다”고 바라봤다.
삼성SDI가 상반기까지 확보한 ESS 수주 규모는 현재 생산능력 아래 2028년 물량까지 일부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앞으로 지속해서 추가 증설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셈인데 여기에도 삼성디스플레이의 지분은 최 사장의 투자 부담을 덜어주는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2025년 하반기부터 조 단위의 여러 ESS 배터리 수주계약을 맺는 성과를 올려왔다.
특히 하반기에도 추가 수주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이 수주들은 최 사장이 2분기 영업흑자 전환에 성공한 삼성SDI의 수익성 개선세를 가파르게 할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에서는 대표적으로 삼성SDI가 하반기 테슬라의 차세대 ESS 모델인 메가팩3에 탑재될 ESS 배터리 일감을 추가로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삼성SDI가 테슬라와 관계를 더욱 단단히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삼성SDI는 1월 미주법인인 삼성SDI아메리카가 배터리 수주를 따냈다고 공시했는데 배터리업계에서는 이 수주가 테슬라와 맺은 공급계약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수주가 2025년 11월 ‘배터리 공급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설명한 삼성SDI의 공시와 연관돼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11월 일부 언론에서 삼성SDI가 테슬라와 3조 원 이상의 ESS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고 삼성SDI는 이와 관련해 조회공시 요구를 받았다.
정원석 연구원은 8월13일 “삼성SDI는 그동안 2027년 이후 미국 ESS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대할 신규 생산거점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시너지셀즈 공장의 단독 소유 전환을 통해 여력을 확보했는데 앞으로 ESS 출하 확대에 따른 이익 추정치 상향은 주가 상승 여력을 넓히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삼성SDI 관계자는 시너지셀즈 공장 단독 전환과 관련해 “이번 결정은 시장 변화를 반영하는 한편 GM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것”이라며 “이 공장에서 미래 전기차 시대를 위한 GM과 공동 노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미국 ESS 수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