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난 후 정적이 찾아왔다. 한 관객은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안의 공기가 그렇게 무거운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스물넷, 다정하고 촉망받던 누나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다. 의사였던 부모는 누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고, 가족은 이후 누나와 함께 살아갔다.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그 시간을 남동생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이 직접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다.
다큐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예고편 장면. ⓒ㈜엣나인필름
영화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에 섣불리 답을 내놓는 대신 한 사람의 발병 이후 가족의 삶이 어떻게 흔들리고 달라졌는지를 20여 년의 시간 속에 담아낸다.
감독은 2001년부터 누나와 가족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감독은 2025년 4월19일 비디오 살롱(VIDEO SALON)과 나눈 인터뷰에서 "언젠가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료로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누나와 다른 가족의 삶을 담담히 기록한 다큐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예고편 장면. ⓒ㈜엣나인필름
이 영화는 '조현병에 걸린 누나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감독은 2월17일 일본 문예춘추와 나눈 인터뷰에서 "제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누나라는 존재에게 변화가 생겼을 때 주변에 있던 저와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은 지난 7일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엣나인필름과의 영상 인터뷰를 통해 "원래는 누나와 아버지, 어머니의 초상권을 제가 지켜야 하는 입장"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원칙을 깨고 이 영상을 세상에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독은 '윤리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그 책임은 제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선 것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이 8월7일 엣나인필름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된 인터뷰 영상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엣나인필름
감독이 기록한 것은 조현병이라는 질환 자체보다 한 사람의 발병 이후 달라진 가족의 모습이었다. 가족은 끊임없이 선택해야 했고, 그 선택은 오랜 시간 가족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조현병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며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며 "환자 본인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이 견지했던 기본적인 태도라고 강조했다.
이 영화는 '이렇게 했더라면 정답이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감독은 "오히려 잘되지 않았던 사례를 일부러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지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를 돌보는 가족, 61.7%가 "부담 크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예고편 장면. ⓒ㈜엣나인필름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2300만 명, 345명 중 1명(0.29%)이 조현병을 겪고 있다. 하지만 정신병적 증상을 겪는 사람 3명 중 2명 이상은 전문적인 정신건강 치료를 받지 못한다.
영화 속 가족의 이야기를 한 가족의 특수한 사례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도 정신질환자를 가족이 돌보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담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발표한 '정신질환자 및 가족지원 서비스 확충을 위한 실태조사'는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정신질환자 1078명과 가족 995명을 대상으로 2023년 9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진행됐다.
조사 결과 정신질환자 가족의 61.7%가 환자를 돌보는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환자에게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57.5%였다.
가족의 신체적 건강 역시 취약했다.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음 또는 매우 좋음'이라고 평가한 정신질환자 가족은 20.9%로, 전체 국민의 36.2%보다 낮았다.
정신질환자의 위기 상황에서 가족은 가장 가까운 대응자이기도 하다. 조사에서 정신질환자가 정신응급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가족·친척으로 64.3%였다. 정신건강복지센터·정신재활시설(61.6%)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결국 정신질환자의 가족에게 돌봄은 환자의 병원 방문을 돕는 일을 넘어선다. 증상이 악화됐을 때 대응하고,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치료를 설득하고, 때로는 위기 상황에서 안전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 역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된다.
만일 내가 더 이상 돌볼 수 없다면? 정신질환자 가족이 짊어지는 부담은 현재의 돌봄에만 머물지 않는다.
환자가 장기간 치료와 돌봄을 필요로 할 경우 가족에게는 또 다른 질문이 남는다. 부모가 늙거나 세상을 떠난 뒤에는 누가 환자를 돌볼 것인가. 가족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누가 그 삶을 책임질 것인가.
이는 정신질환자의 치료만으로 가족의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환자가 치료를 받고 회복하는 과정뿐 아니라 주거와 경제적 자립, 일자리, 가족의 휴식과 건강까지 함께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관객에게 남은 질문,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예고편 장면 ⓒ㈜엣나인필름
감독은 영화제에서 상영할 당시 관객석이 텅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영화나 TV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그동안 거의 다루지 않았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한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12일 만인 지난 10일 누적 관객 5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당시 61개 관에서 출발한 영화는 입소문을 타며 9일 기준 78개 관으로 상영관을 늘렸다.
1시간40분짜리 영화에 담지 못한 이야기는 책으로도 담아냈다. 후지노 감독의 책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지난 1월 일본에서 출간됐다. 이 영화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에서는 공개되지 않는다.
영화는 부모를 비난하거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영화의 제목처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가족에게 조현병이 나타났을 때, 가족은 무엇을 해야 할까. 영화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