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 계속될 것만 같았던 코스피의 질주가 끝났다. 증시가 급락했고, 반대매매, 미수거래, 그리고 청년 파산이라는 단어들이 뉴스를 채우기 시작했다.
만 20세 이상 30세 미만 투자자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025년 4월 1888억 원에서 2026년 4월 4239억 원으로 2.2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전 연령 평균 증가율은 1.96배, 50대는 1.85배였다. 빚을 내 주식을 사는 것은 어느 세대에서나 벌어진 일이었지만, 증가 속도가 가장 가팔랐던 쪽은 자산이 가장 적은 세대였다.
금융당국 수장도 "2030세대 청년을 중심으로 빚투로 경제적 충격을 받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부의 추월차선'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AI생성이미지
문제는 이 '걱정'이 사회에서 소비되는 방식이다.
‘한강물 수온 체크’, ‘레버리지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조롱성 밈(Meme)들, 기사 아래에 달리는 댓글, 회식 자리의 훈수, 명절 밥상의 잔소리에는 대체로 같은 문장이 깔려 있다. 청년 세대가 땀 흘려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한탕주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조롱과 무시는 언제나 걱정의 외피를 쓰고 온다. 실패한 청년은 시대의 피해자가 아니라 조급함과 욕심을 이기지못한, 인격적 결함을 지닌 존재가 된다.
왜 요즘 청년들은 정상적인 주행을 하지 않고, '부의 추월차선'만 찾고 있는가.
이 질문에는 틀린 전제가 하나 들어 있다. 청년이 추월차선을 찾는 것은 '요즘'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은 언제나 추월차선을 찾아왔다. 자산은 없고 시간은 많으며 잃을 것이 적은 생애 주기의 특성상, 위험을 감수해 격차를 단번에 좁히려는 시도는 모든 세대에서 반복된 일이다. 지금 청년들에게 훈계하는 세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도 각자의 시대에 각자의 추월차선을 찾아 올라탔다. 다만 그 차선이 지금과는 형태가 달랐기 때문에 자신들의 과거를 ‘추월’이 아니라 ‘성실 주행’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다른 것이다. 과연 지금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부의 추월차선’이 남아있기는 한 것인가.
◆ 사라진 추월차선, 개미는 더 이상 베짱이를 이길 수 없다
추월차선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정상 주행 차로(본선)인 근로소득 저축보다 속도가 빨라야 하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정상 경로여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는 이 조건을 만족하는 차선을 세대마다 하나씩 제공해 왔다.
산업화기에는 상경과 해외 파견이 있었다. 몸을 쓰는 대가로, 고향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목돈이 주어졌다. 고성장기에는 대기업 취업과 저축이 있었다. 쉬운 취업, 두 자릿수의 금리, 임금 상승률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저축이라는 본선을 그 자체로 추월차선으로 만들어줬다.
심지어 2000년대에도 차선은 남아 있었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산 뒤 조금씩 이자를 갚아나가다 보면 집값이 올라 대출을 상쇄하는, '성실한 레버리지'였다.
하지만 그 차선들은 지금 청년들의 세대로 넘어오면서 하나씩 폐쇄됐다.
취업은 더 이상 추월차선의 입구가 아니다. 정규직 진입 자체가 경쟁의 종착점이 되면서, 취업은 본선에 합류하기 위한 관문에 지나지 않게 됐다. 저축도 마찬가지다. 금리가 자산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간이 길어지면서, 저축은 ‘자산 증식’이 아니라 ‘감가상각’의 다른 이름이 됐다. 부동산은 진입에 필요한 시드머니 자체가 근로소득으로 축적 가능한 범위를 아득히 벗어나 버렸다.
그렇게 지워지고 남은 하나가 바로 자본시장에서의 고배율 레버리지다. 시드머니가 적어도 진입이 가능하고, 분산(variance)이 충분히 커서 이론상 도달 확률이 0이 아닌 유일한 길이다.
지금 세대의 청년들이 이전 세대의 청년들과 비교해 더 도박을 선호하는 취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선택 가능한 차선의 목록에서 항목들이 하나씩 삭제된 결과, 마지막에 남은 항목을 고른 것에 가깝다.
◆ 본선이 결승선에 닿지 않는다면, 성실함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청년의 빚투를 나무라는 조언은 대체로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우량주에 장기 투자해 연 5% 안팎의 수익을 꾸준히 내라는 것이다.
이 조언은 결국 본선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확인해야 할 것은 하나다. 그 본선이 실제로 결승선에 닿는가.
예를 들어 연소득 5천만 원의 가구가 소득의 30%인 연 1500만 원을 매년 저축하고, 이를 연 5% 복리로 굴린다고 가정해보자. 성실한 ‘가치 투자’를 30년 넘게 흔들림 없이 유지한다는 전제다.
서울 아파트 3분위 평균 가격인 12억4천만 원(2026년 5월)에 도달하는 데는 34년이 걸린다. 서울 아파트 전체 평균 가격인 15억9500만 원(2026년 7월)에 도달하는 데는 38년이 걸린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서울 집값이 1원도 오르지 않는다는 ‘비현실적’ 전제 위에서 이야기다.
집값이 연 3%씩만 오른다고 가정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15억9500만 원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88년으로 늘어난다. 25세에 시작해 113세에 도달하는 계획에, '자산 형성'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2025년 서울 아파트 실제 상승률인 8.98%를 대입하면 계산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도달 시점이 늦춰지는 것이 아니라 소멸한다.
"성실하게 모으라"는 조언은 애초에 해답이 없는 문제에 제시된 풀이법이다. 심지어 이 계산에는 전월세 비용도, 학자금 상환도, 육아 비용도 들어 있지 않다.
우화 속 개미는 성실했기 때문에 겨울을 날 수 있었다. 그 우화가 성립하려면 겨울이 오기 전에 곳간을 채울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개미는 곳간을 채우는 속도보다 곳간의 가격이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른 세계에 살고 있다. 반면 베짱이는 물려받은 아파트와 물려받은 주식 계좌 위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개미의 자산 증가 속도는 베짱이의 자산 증가 속도를 구조적으로 따라잡지 못한다.
이 사회에서 성실함은 격차를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없다.
◆ 청년들은 추월차선이 아니라 '갓길'로 내몰리고 있다
도로에서 갓길 주행이 발생하는 조건은 하나다. 본선이 막혀 있고, 추월차선마저 폐쇄돼 있을 때다.
지금 청년들이 정확히 그 상태에 있다. 본선은 결승선에 닿지 않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추월차선은 하나씩 닫혔다. 남은 것은 위험하고 불안정하며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갓길뿐이다. 그 갓길의 이름이 레버리지고, 코인이고, 빚투고, 미수거래다.
30년을 성실히 모아도 목적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게임과, 대부분의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지만 극히 일부에게는 몇 년 안에 결승선에 도달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게임이 나란히 놓여 있다. 후자를 고르는 선택을 조급함이나 욕심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청년들의 ‘도박수’가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정상 경로의 기댓값을 0에 가깝게 만들어놓은 사회에서는 도박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레버리지는 일확천금의 욕망이라기보다 계층 하락을 막아보려는 방어적 베팅에 가깝다. 올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떨어지지 않기 위해 거는 돈이다.
성실하게 살면 내일이 나아진다는 믿음은 도덕이 아니라 경험적 예측이다. 예측이 반복적으로 틀리는 사회에서 그 믿음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훈계는 계속될 것이다. 도박장을 떠나라는 조언, 분수를 알라는 충고, 착실하게 살라는 당부. 대부분 선의에서 나온 말, 혹은 선의의 외피를 뒤집어 쓴 말들일 것이다.
다만 그 말을 꺼내기 전에, 답해야 할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모든 세대의 청년은 부의 추월차선을 찾아왔다. 우리는 이 세대에게, 도박장 말고 올라탈 만한 차선을 하나라도 남겨두긴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