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빚 부담을 안고서도 미래 사업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 그리고 장남 신유열 미래성장실장 부사장 체제에서 완성될 '뉴롯데'의 방향을 보여주는 자금에 가깝다.
소비와 유통 중심으로 성장한 현재의 롯데그룹이 아니라 기술과 지식재산(IP), 글로벌 사업을 성장축으로 삼는 새로운 롯데그룹을 만들기 위한 자본 재배치라는 의미다.
롯데그룹이 내수 중심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기술·IP 중심의 '뉴롯데' 구축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지주
14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롯데렌탈 매각은 호텔롯데의 재무부담을 일부 완화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신용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된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총 1조3105억 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음에도 높은 차입 부담과 대규모 투자, 계열사 지원 수요가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문아영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롯데렌탈 지분 매각 완료 시 대규모 유동성 확보로 호텔롯데 및 부산롯데호텔의 재무부담 완화가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현재 현금창출력 대비 차입부담 수준, 계열사 지원 부담, 투자계획 등을 감안 시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고 바라봤다.
실제 호텔롯데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2323억 원, 영업이익 74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8.5%, 82.8% 증가하며 실적 개선세를 보였지만 현금 사정은 녹록지 않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마이너스 102억 원을 기록했고, 잉여현금흐름(FCF) 역시 마이너스 512억 원에 머물렀다. 총차입금은 8조6199억 원으로 늘었고, 1분기 금융비용만 1516억 원으로 영업이익의 두 배를 웃돌았다. 실적은 좋아졌지만 현금은 부족하고 빚 부담은 오히려 커진 셈이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자금 운용 방향은 빚을 줄이는 데보다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데 더 가까워 보인다. 확보한 현금을 곳간에 쌓아두기보다 바이오와 인공지능(AI)·인공지능 전환(AX), 호텔 경쟁력 강화 등에 재투입하고 있어서다. 호텔롯데는 최근 롯데건설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4천억 원 규모의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했고, 지난해 롯데바이오로직스에 2144억 원을 출자했다. 롯데렌탈 매각 계약을 체결한 지난 11일에도 롯데바이오로직스 유상증자 참여를 위해 486억8천만 원의 추가 출자를 결정했다.
재무 부담을 안고서라도 미래 사업의 성장 속도를 늦추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읽힌다. 롯데그룹이 최근 롯데에코월, 롯데케미칼 파키스탄 법인, 롯데웰푸드 증평공장 등 비핵심 자산을 잇달아 정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단순히 부채를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이라기보다 미래 사업에 투입할 실탄을 마련하는 과정에 가깝다.
눈여겨볼 점은 롯데그룹이 정리하는 '비핵심 자산'들이 대부분 적자 사업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렌터카 1위 롯데렌탈을 비롯해 화학·식품 생산 자산들은 여전히 일정 수준의 현금을 벌어들이는 사업들이다. 그럼에도 매각이 이뤄지는 것은 롯데그룹의 사업 재편 기준이 현재 수익성보다 미래 성장축에 맞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최근 롯데그룹이 정리하고 있는 자산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드러난다. 대부분 국내 소비시장과 전통 제조업에 뿌리를 둔 사업들이다. 안정적 현금 창출 능력은 갖췄지만 성장의 무대가 국내 시장에 머물러 있고, 기술 축적이나 IP 확보, 글로벌 확장성 측면에서는 롯데그룹이 그리고 있는 미래 성장 전략과 거리가 있다.
이는 롯데그룹이 최근 몇 년간 마주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롯데그룹의 양대 축인 유통과 화학 사업은 내수 소비 둔화와 인구 감소, 온라인 전환, 중국발 공급 과잉 등 구조적 변화 속에서 수익성 회복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과거처럼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이거나 생산설비를 확대하는 방식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뚜렷해진 것이다. 결국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국내 소비시장에 묶인 사업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확장 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롯데그룹이 자본을 재배치하고 있는 방향도 명확하다. 최근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사업들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기술·데이터·IP'이다. 바이오는 생산설비 규모보다 기술력과 연구개발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이고, AI는 데이터와 소프트웨어가 핵심 자산이다. 원롯데 전략 역시 단순한 해외 생산기지 확대가 아니라 빼빼로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 IP를 육성해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뉴롯데' 전략의 실행 무대에는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부사장이 있다. 신 부사장은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를 맡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일 식품 합작법인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돼 원롯데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미국 CES 현장에서는 그룹의 AI 기술과 미래 사업을 직접 점검했고, 롯데쇼핑 사내이사로 선임되는 등 유통과 글로벌 사업으로도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