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튀르키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뒤 기내식 컨테이너 트럭에 몰래 숨어 비행기를 바꿔 타고 출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사회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빌 클린턴·조지W부시·버락오바마 등 전임 미국 대통령 3명도 위험에 대비해 비행계획을 숨긴적이 있지만, 함께 이동하던 참모진과 취재진들을 공격받을 수 있게 놔주고 자신만 빠져나간 전례는 없었다. 참모진을 미끼로 썼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0월30일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11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 이전에 다른 대통령들도 비밀리에 입출국을 감행한 적이 있지만 참모와 취재진을 '미끼'로 만든 사례는 전례가 없다고 짚었다.
미국 클린턴, 부시, 오바마의 '비밀 비행'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000년 카슈미르 긴장 완화를 위해 인도와 파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비행기 3대를 동원했다.
그는 인도를 떠날 때 군용기 문 앞에서 배웅객과 인사를 나눈 뒤 비행기 앞쪽으로 살짝 돌아 근처에 세워둔 무표식 흰색 제트기로 옮겨탔다. 이 때 원래 타려던 군용기와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색상의 유사기체가 유인용으로 함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
비밀 비행을 했다는 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사했지만 이 때 동행했던 취재진은 사전에 작전내용과 위험성을 브리핑 받았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와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를 전격적으로 방문했던 사례도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례와 비슷하다.
부시 대통령은 당시 미국 텍사스 크로퍼드 별장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무표식 차량으로 미국 워싱턴 외곽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이동해 이라크로 향했다.
이는 영부인과 가족들도 몰랐던 극비 이동작전이었고, 수행단에는 비밀 유지를 서약한 소수의 참모와 기자단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처음부터 실제 목적지를 알고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이란의 미끼로 위험에 노출됐던 트럼프 대통령의 이동작전 사례와 다르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2010년 아프카니스탄을 깜짝 방문한 사례가 있었다. 이 때 취재진에게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주말을 보낸다고 안내됐지만, 대통령이 다른 장소나 다른 이동수단에 있는 것처럼 꾸미는 위장작전은 동원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선 사례와 차이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같은 3명의 전직 미국 대통령의 사례가 실제동선을 언론과 대중에게 숨기기는 했지만, 동행한 참모나 기자를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짚었다.
대한한국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12월 이라크 북부 아르빌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 사단을 전격방문해 병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도 비밀리에 위험지역을 방문한 사례가 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2월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 및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한 한국 자이툰 부대를 극비리에 방문했다. 이 계획은 코드명 '동방계획'으로 불렸다.
이 당시 김우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이종석 NSC 사무차장에게 구상을 미리 밝혔고 합동참모본부와 대통령경호실 등 극소수 합동 준비팀이 작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은 당시 프랑스 공식방문을 마친 뒤 대통령 특별기로 파리를 떠나 쿠웨이트를 경유해서 군용기로 아르빌에 도착해 자이툰 부대원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면서 2시간 가량 머물렀다.
자이툰 부대는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우방국들에 다국적군 참여를 요구함에 따라 이라크 현지에 파견한 부대이다. 애초 미국은 전투부대를 요구했으나 외교협상 끝에 비전투부대 파견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대한민국은 2004년 2월 3800여 명 규모의 육군 사단을 편성해 이라크로 보냈다.
노 대통령은 파병을 피하려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당초 예정지였던 이라크 남부 키르쿠크가 저항세력의 테러 위협으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자 한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정된 쿠르드족 자치구역 아르빌로 주둔지를 변경했다.
노 대통령은 특별기가 이륙한 지 30분 만에 동행기자단이 있던 좌석으로 직접 찾아가 "이 비행기는 서울로 바로 못간다"며 아르빌 방문사실을 그 자리에서 비로소 처음 알렸다.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처음부터 대통령과 같은 비행기에 동승한 채 최종 목적지만 이륙 뒤 통보받았을 뿐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사례처럼 자신도 모르게 다른 비행기에 남겨져 대통령 대신 위험을 감수하는 '미끼'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