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업계가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매출 1조 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내수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지만 방한 관광객들은 지갑을 열고 있다. 이제 관광객 유치는 일부 백화점이나 면세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역 경제와 내수 시장 전반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 주목할 점은 관광객들의 소비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명품을 사고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골목과 음식, 축제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다. '한국산'이라는 사실보다 그 안에 담긴 장소성과 문화, 경험에 더 높은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전주가맥축제 대학생 자원봉사단 '가맥지기'들이 함께 건배를 하며 축제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지방 입장에서는 기회이자 숙제다. 과거처럼 랜드마크 하나를 짓거나 유명 관광지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을 붙잡기 어려워졌다. 대신 그 지역만이 가진 문화와 이야기를 얼마나 매력적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최근 찾은 전주가맥축제 현장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가맥 문화를 이어온 상인들과 축제를 운영하는 지역 대학생 서포터즈 '가맥지기',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지역 상인들까지. 축제는 지역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고 키워온 결과물에 가까웠다. 관광객들이 소비하는 것도 맥주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전주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다.
1980년대 동네 슈퍼에서 시작된 가맥 문화가 지역 대표 축제로 성장한 과정 자체가 전주만의 관광 자산이 된 셈이다. 전주가맥축제를 보며 문득 몇 해 전 찾았던 일본 사가현 다케오시가 떠올랐다.
인구 5만 명 남짓의 작은 온천 도시인 다케오시는 한때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는 여행지가 됐다. 강남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의 모델로 알려진 다케오시립도서관 덕분이다.
당시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도서관을 기획한 당사자인 히와타시 게이스케 전 다케오시 시장을 만난 적이 있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이미 시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지역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었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섞여 이야기를 나누는 교류 공간에 가까웠다. 그는 "좋은 공간은 결국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왜 도서관에 그렇게 공을 들였느냐는 질문에도 "내가 가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답했다.
실제로 다케오시립도서관은 도시의 운명을 바꾼 공간이 됐다. 연간 100만 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성장했고, 방문객 수는 지역의 대표 관광자원인 다케오 온천을 넘어섰다. 독특한 공간 콘셉트는 서울시와의 교류 협력으로 이어졌고, 코엑스 별마당도서관의 모티프로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이야기한 성공의 비결이 건물이나 예산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지역 주민들이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다케오시가 관광객들에게 판 것은 도서관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 도시만의 분위기와 경험이었다.
지방이 직면한 문제는 관광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찾아올 이유가 부족한 것이다. 전주가맥축제와 다케오시는 지역의 오래된 문화와 일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충분한 관광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지역의 자산으로 다시 발견할 것인가. 지방 소멸을 이야기하는 시대일수록 그 질문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