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완전 경쟁하는 기업은행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경영 자율성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
장민영 IBK기업은행장이 노조의 출근 봉쇄 끝에 임명 22일 만에 첫 출근을 한 뒤, 기업은행 노사가 함께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노사 공동선언문의 한 문장이다.
금융권에서는 이 조항을 노사가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겨냥해 넣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반 년이 지난 뒤 이 문장은 다른 국면에서 주목받게 됐다. 기업은행의 지방 이전과 관련된 논의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상장사라는 점에서, 이번 문제는 단순히 노사간의 갈등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 노동자와 주주가 동시에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금융위 제청·대통령 임명의 구조로 행장 자리에 오른 장 행장이 이해관계자들 사이 가교가 될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장민영 IBK기업은행장이 취임 반 년 만에 '지방 이전'이라는 난제를 안게 됐다.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 이전 확정 전부터 구체화되는 노조 반발, 지역 정치권은 유치 총력전
4일 각 국책은행 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KDB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노조는 11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 본점 인근에서 공동 집회를 연다.
3대 국책은행 노조가 함께 거리로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본점 직원을 중심으로 1500~2000명 참석이 예상되며, 영업 차질을 피하기 위해 업무 종료 이후로 시간을 잡았다.
집회의 배경은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수도권 소재 350곳 안팎의 지방 이전을 검토하고 있으며, 여기에 3개 국책은행이 포함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기업은행이 대구로 이전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국토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지방이전 태스크포스(TF)를 투쟁본부로 전환했고, 정부 로드맵 발표 시점과 맞춰 9월 총파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갈등의 불씨는 이미 타오르고 있는 셈이다.
해당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들은 유치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대구는 추경호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14명이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IBK기업은행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등 34개 기관 유치 전략을 논의했다. 기업은행 대구 이전은 추 시장의 핵심 공약이었고, 6·3 지방선거에서는 여야 후보가 모두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 산업은행·수출입은행과는 다르다, 소액주주 27.7% 보유한 '상장사'로서의 위치
특기할 만한 점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과 기업은행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세 은행 중 기업은행만 상장사이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1994년 코스닥 상장 이후 2003년 코스피에 이전상장했다. 2025년 사업보고서 기준 정부(기획재정부)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68.5%이고, 소액주주가 27.7%를 들고 있다. 반면 산업은행은 정부가 100% 출자한, 그리고 수출입은행은 정부와 한국은행 등이 출자한 비상장 기관이다.
정부가 모든 권한과 명분을 쥐고 있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과 달리, 기업은행은 정부가 지방이전을 강행할 경우 소액주주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정부의 주요 정책 방향인 '주주권 보호'와도 충돌할 소지도 있다.
류장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기업은행지부의 노조위원장 역시 “기업은행은 상장된 회사로서 주주 환원 의무가 있고, 일방적 본점 이전은 재직자 뿐 아니라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점 소재지 변경은 중소기업은행법 개정 사항으로, 결정 권한은 국회와 정부에 있다. 하지만 노사 공동 합의문에 나온 것처럼 ‘시장에서 완전 경쟁하는’ 회사이자 상장사로서 기업은행의 위치를 살피면, 권한의 소재와 상관없이 소액주주와 노동자들의 반발을 외면할 경우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이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
지방이전 논의가 재점화된 시점 역시 공교롭다. 기업은행은 지난달 27일 올해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창립 이후 처음으로 배당기준일 7월31일, 주당 210원의 분기배당을 결정했다. 분기배당이라는 적극적 주주환원책을 처음 시작한 달에, 기업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 IR팀장 지냈던 장민영, 노조·주주·정부 잇는 소통 창구로서 역할 무겁다
기업은행 지방 이전이 아직 '미정'이라는 점에서 장 행장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이전의 필요성과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어서다.
대구 이전론은 신용보증기금과의 정책금융 연계, 대구 25개·경남 26개 등 51개 영업망 총괄을 근거로 든다. 반면 노조는 중소·벤처기업 절반 이상과 총예금의 79%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점을 들어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말하기가 애매한 상황에 놓여있다.
장 행장은 2010년 경영관리부 IR팀장을 지냈다. 주주 커뮤니케이션을 직접 해본 행장이 상장사의 수장으로서 정부와 주주, 정부와 노동자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장 행장은 1964년생으로 대원고와 고려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중소기업은행에 입행해 경영관리부 IR팀장, 여의도한국증권지점장, 자금운용부장, IBK경제연구소장을 거쳐 2020년 부행장(리스크관리그룹장)에 올랐다. 이후 IBK자산운용 부사장과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2026년 제28대 IBK기업은행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