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일본 엔화 약세를 부양하려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이런 개입은 이례적이지만 일본의 막대한 미국 국채 보유량, 일본의 대규모 대미 투자, 미국의 대일본 무역 적자 등을 봤을 때 당연한 조치라는 외신 분석이 나왔다.
다만 이런 개입에도 엔화 약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시민들이 2026년 8월3일 일본 도쿄에서 미국 달러 대비 일본 엔화 환율을 보여주는 외환 지표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EPA통신=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3일(현지시각) "일본 엔화가 최근 미국 달러 대비 약 4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며 약세를 보였다"며 "미국과 일본은 경제 및 금융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엔화의 약세는 미국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 재무부와 일본 재무성은 지난달 31일 28년 만에 이례적으로 함께 엔화 매입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 "재무부가 수십억 달러 상당의 일본 엔화를 매입했다"며 "진주만 공격을 제외하면 일본은 우리에게 매우 잘해줬고 이번 개입은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처럼 엔화를 사들이는 것은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약 일본이 외환시장에 추가로 개입하려면 자금 마련을 위해 막대한 양의 미국 국채를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 국채를 보유한 나라로 보유량은 약 1조1천억 달러(약 1567조 원)가 넘는다.
일본이 미국 국채를 매각하면 국채 가격이 하락해 궁극적으로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미 최근 몇 주 간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 국채 수익률이 상승했고, 7월29일에는 3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이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의 움직임은 한국 원화 등 다른 아시아 통화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엔화를 부양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통화 지탱을 위해 달러 보유고를 줄줄이 매각하는 가능성도 함께 줄일 수 있다.
일찍이 미국 재무부는 엔화의 변동성에 주목해 왔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월 일본 국채 수익률 상승이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의 원인이라고 지적했고 이에 재무부는 엔화 개입을 검토했다.
국채 외에도 일본은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대미 투자 규모는 2025년 기준 주식 투자 약 1조2천억 달러(약 1710조 원), 회사채 투자 3천억 달러(약 427조 원) 등 막대한 규모에 이른다.
미국의 대일본 무역 적자 문제도 개입의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무역 적자 확대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엔화 약세를 멈춰야 한다. 엔화 약세는 미국 달러 강세로 이어져 미국 수출업체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무역대표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미국은 일본에서 약 1460억 달러(약 208조 원) 상당의 상품을 수입했고, 약 820억 달러(약 117조 원) 상당의 상품을 수출해 큰 규모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따라서 엔화 약세로 일본 수출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누리게 되면 무역 적자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앞으로도 엔화 약세를 멈추기 위해 협력할 것임을 공식화했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2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가타야마 사츠키 일본 재무상은 3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필요하다면 엔화 가치를 강화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3일 엔화는 1달러당 157엔까지 상승하며 5월 초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타야마 사츠키 일본 재무상이 2026년 8월3일 일본 도쿄 재무성에 도착해 언론에 미국과 일본의 공동 외환 조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이 같은 개입에도 엔화 약세가 멈출지는 불확실하다. 엔화 약세의 원인 중 하나로 미국과 일본 기준금리 차이가 있다는 설명도 제기됐다.
애널리스트들은 뉴욕타임스에 "일본 금리가 3.5~3.75%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 미국 금리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엔화 약세는 지속될 것"이라며 "올해 하반기에 일본은행은 다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행은 6월에 31년 만에 기준금리를 최고 수준인 1%로 인상했다. 수년간 일본은행은 막대한 양의 국채를 매입해 금리를 극도로 낮게 유지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려 했다. 그런데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가격과 물가가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금리를 인상한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아직까지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았으나,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 인상에 관한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만일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 일본과의 금리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일본의 재정 상황이 있다. 투자자들은 일본의 부채와 정부의 감세 및 지출 확대 정책으로 정부 재정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5년 말 기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1.4% 늘어난 1342조 엔(1경2588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30%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부채 부담이며 미국의 두 배에 달한다.
다카에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식료품 소비세율을 2027년 4월부터 2년간 1%로 낮추는 방안을 밀고 있는 등 감세 정책을 추진해 세입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사나에 총리는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초래된 높은 생활비 부담을 덜기 위해 기업과 가계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부채 증가와 지출 확대로 재원이 감소하자 추가적으로 국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가 상승해 전체 시장금리가 늘어나 민간의 차입 비용이 상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에서처럼 인플레이션 압력이 겹치면 자국 통화 가치가 떨어져서 결국 환율이 상승하므로, 근본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경제 정책이 엔화 약세를 불러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