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롯데'의 밑그림이 선명해지고 있다. 따로 흩어져 있던 변화들을 하나로 이어 보면 롯데그룹이 그리고 있는 미래가 보인다. AI(인공지능)와 바이오, 글로벌 사업 등 미래 성장 동력을 키우는 동시에 직급을 단순화한 GL(Global Leader) 제도를 도입해 조직 운영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부사장의 경영 무대도 이러한 미래 성장 축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바이오를 시작으로 글로벌 식품과 유통, AI 등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역할이 넓어지고 있다. '뉴롯데' 전략과 신 부사장의 경영 행보가 맞물리며 차세대 롯데그룹의 청사진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AI·바이오·글로벌 사업을 중심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GL(Global Leader) 제도를 확대하며 조직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롯데그룹 계열사의 인사제도를 종합하면 직무 중심 인사체계인 GL 제도는 현재까지 롯데바이오로직스와 롯데이노베이트, 롯데케미칼, 대홍기획, 롯데웰푸드, 롯데백화점, 롯데GRS, 롯데온까지 8개 핵심 계열사에 도입됐다.
지난해 그룹 차원의 직무 중심 인사체계 확대를 선언한 지 1년여 만에 미래사업과 유통·식품 등 핵심 계열사 대부분으로 GL 제도가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롯데는 올해도 도입 대상을 넓혀가고 있으며, 다음 달에는 롯데칠성음료도 시행에 들어간다.
GL 제도는 기존의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연공 중심 직급을 단순화하고 직무와 역할, 전문성을 중심으로 평가와 보상을 하는 인사체계다. 단순히 호칭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직무 중심 조직으로 전환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미래 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유연하게 배치하기 위한 것이 핵심이다.
롯데그룹은 GL 제도를 '뉴롯데'를 뒷받침하는 조직 혁신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올해 상반기 VCM(옛 사장단 회의)에서 "지금이 변화의 마지막 기회"라며 사업 구조 혁신과 AI 경쟁력 강화, 생산성 향상, 조직 경쟁력 확보를 강조했다.
여기에는 AI와 바이오, 글로벌 사업 등 미래 성장 분야에서는 빠른 의사결정과 전문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연공보다 직무와 역할 중심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직급 체계를 단순화해 의사결정 단계를 줄이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조직의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GL 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계열사들은 롯데그룹 미래사업의 핵심 축이다. 롯데케미칼은 AI 기반 연구개발과 첨단소재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고, 롯데이노베이트와 대홍기획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그룹 AI 전환을 이끌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송도 바이오캠퍼스를 중심으로 신 회장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은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롯데웰푸드는 한일 합작의 '원롯데 전략'을 기반으로 글로벌 식품 사업을 키우고 있다. 롯데쇼핑은 올해 가동 예정인 부산의 오카도 자동화 물류센터(CFC)를 앞세워 AI 기반 스마트 물류와 이커머스 경쟁력 회복에 나서고 있다.
신 부사장의 경영 보폭 역시 이러한 미래 사업을 중심으로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롯데쇼핑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유통과 이커머스 경영에 참여했고, 미국 CES에서는 롯데이노베이트의 AI 기술을 직접 점검하는 등 미래 기술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어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를 맡아 바이오 사업을 이끌고 있으며, 올해는 롯데웰푸드 한일 합작법인 이사회 의장에 오르며 '원롯데 전략'의 전면에도 섰다.
재계에서는 신 부사장이 지난해부터 적극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고 경영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점을 후계 구도가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롯데그룹의 미래 성장사업을 차례로 맡으며 경영 영역을 넓히는 동시에, 조직 혁신도 함께 추진되는 모습이 차세대 리더 체제를 준비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올해 71세인 신 회장의 세대교체 시계도 지난해부터 한층 빨라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후계 구도가 구체화할수록 조직부터 바뀌는 것은 국내 대기업에서 반복돼 온 공식이다. 총수가 바뀌거나 차세대 리더가 경영 전면에 나서는 시점에는 기존 연공서열 중심 조직을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재편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G2 직급체계를 도입하며 수평적 조직문화를 정착시켰고, LG그룹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직급을 단순화하고 책임 중심 인사체계로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