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과거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법인카드 관리와 검증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왼쪽), 신용카드 자료사진. ⓒ연합뉴스/픽사베이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협회 법인카드로 자택 인근 식당과 호텔 등에서 약 1400만 원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휴일이나 자택 인근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할 경우 요구되는 소명 절차조차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협회가 약속했던 재발 방지 장치가 유명무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제출받은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홍 전 감독은 2024년 7월부터 2026년 5월까지 총 3742만 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이 가운데 1406만 원은 홍 전 감독의 자택이 위치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일대에서 사용됐다.
결제 장소에는 자택 인근 호텔과 정육식당, 해장국집 등이 포함됐다. 어린이날과 현충일, 광복절 등 공휴일에도 분당구 소재 업소에서 수십만 원씩 결제한 기록이 확인됐다.
대한축구협회 업무추진비 지침에 따르면 휴일이나 자택 인근, 관할 구역을 벗어난 원거리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할 경우 출장 등 업무 관련 증빙자료나 소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법인카드가 조직의 비용으로 집행되는 만큼, 사용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회는 홍 전 감독으로부터 별도의 소명서를 제출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협회 측은 영수증에 참석자와 인원을 기재했고 매월 사용 내역을 점검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내부 규정이 요구한 소명 절차가 빠졌다는 점에서 관리 체계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더욱 논란이 되는 부분은 협회가 법인카드 사용 기준을 다시 강조한 이후에도 비슷한 결제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축구협회는 2025년 5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법인카드 사용 교육을 진행했다. 홍 전 감독은 교육 이후에도 자택 인근에서 총 994만 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정을 재차 안내한 뒤에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용 형태가 반복된 셈이다.
이번 논란은 축구협회의 오랜 법인카드 관리 문제와 맞닿아 있다. 진 의원실이 2021년 1월부터 2026년 7월까지 대한축구협회 법인카드 결제 내역을 분석한 결과, 백화점 결제는 218건, 총 2602만5980원으로 집계됐다. 주유소 결제 역시 300건, 5188만2527원에 달했다. 10년 전 문제가 됐던 백화점과 주유소 결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임생 전 기술총괄이사는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등에서 세 차례에 걸쳐 총 54만6000원을 결제했고, 홍 전 감독도 신세계백화점 등에서 16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 관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사용 기준과 관리 절차가 명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적 사용 의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양궁협회는 남녀 기성복 등 58개 업종의 법인카드 사용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대한축구협회 지침에는 백화점이나 아동복 매장 등 특정 업종에 대한 별도 제한 규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한축구협회는 이미 한 차례 법인카드 문제로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감사에서는 전·현직 임직원 18명이 유흥단란주점, 안마시술소, 노래방, 피부미용실, 골프장, 백화점, 주유소 등에서 법인카드를 업무와 무관하게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 당시 확인된 부적정 사용은 1496회, 금액은 약 2억 원에 달했다. 협회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법인카드 관리 강화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홍 전 감독의 연봉은 대한축구협회가 공개하지 않았지만, 대표팀 감독 선임 당시 업계에서는 약 20억 원 안팎으로 추정됐다.
홍 전 감독은 2024년 대표팀 감독 선임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와 관련해 "10년 전 가졌던 책임감과 사명감이 다시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면담 후 마지막 봉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20억 원대 보수를 받는 자리를 봉사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법인카드 사용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홍 전 감독이 강조했던 책임감과 사명감이 실제 행보와 부합했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정부 보조금뿐 아니라 국가대표 경기 중계권료, 스폰서십, 입장권 판매 등 자체 수입으로 운영되는 민간 사단법인이다. 다만 정부 지원금 등 공적 성격의 재원이 일부 포함되는 만큼 예산 운용 과정에서 공공기관에 준하는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오는 30일 대한축구협회 청문회를 개최한다. 청문회에는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감독, 이임생 전 기술총괄이사 등 15명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다만 홍 전 감독 선임 과정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이 전 이사는 현재 캄보디아 프로축구 나가월드 FC에서 근무 중이라며 국회에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감독 선임 과정 문제를 둘러싼 질의가 얼마나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