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와 궤를 같이 해온 것으로 평가받는 미셸 박 스틸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에 부임했다.
미셸 스틸 주한미국대사가 30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행사장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계 미국인인 스틸 대사는 부임 직후 한미동맹 강화와 양국 협력을 강조했지만 방위비 분담금과 통상·투자 문제, 대북 정책 등 양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린 현안에서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대미 외교에 부담으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미셸 박 스틸 주한 미국대사는 31일 연합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미국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 중 하나를 공유하고 있다"며 "철통같은 한미동맹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핵심축으로 지속되고, 양국 국민의 필요를 계속해서 충족시켜 나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과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특히 대미 투자 지연과 쿠팡 사태 등 한미 통상 현안에 대한 스틸 대사의 강경한 입장은 이재명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스틸 대사는 대사 후보자 신분이었던 지난 5월 "공동 팩트시트에는 미국 기업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 매우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제조업 부흥과 공급망 재편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동맹국에도 미국 중심의 경제 협력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국내 산업 보호'와 '경제 주도권 강화'를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가 접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스틸 대사는 "우리 앞에는 아직 많은 일들이 남아 있으며, 그 도전과제들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많은 공동의 우선순위 과제에서 훌륭한 진전을 이뤘지만 또 다른 과제들 역시 더 많은 관심과 솔직한 대화, 그리고 양측이 차이를 넘어 상호 이익을 위한 길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틸 대사의 부임을 바라보는 한국 정치권과 외교가의 시선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배경은 양국 간 이해를 높이는 긍정적 요소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충실히 전달하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30일 MBC뉴스에서 "핵잠수함 도입이라든지 원자력 권한을 확대하는 부분은 카운터파트, 소통 창구에 어떻게 보면 리더가 들어왔기 때문에 더 촉진될 수 있다"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와 마가(MAGA)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쿠팡 등 통상 현안에선 미국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할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틸 대사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정치인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정치권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
그는 연방 정치에 진출하기 전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위원회(Board of Equalization) 위원을 지냈고, 이후 오렌지카운티 감독위원회(Board of Supervisors) 위원으로 활동했다. 202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당선되며 한국계 여성 최초의 연방 하원의원 중 한 명이 됐다. 이후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캘리포니아 지역구를 대표하는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스틸 대사는 공화당 내 강경보수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의회 활동 당시 미국 노동자와 기업 보호, 세금 부담 완화, 규제 축소 등을 강조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맞닿아 있는 정치적 입장을 나타내 왔다.
특히 하원의원 시절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와 인권 문제를 비판했고, 미·중 전략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지켜야 한다며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는 북한에 있는 가족과 헤어진 한국계 미국인들의 가족 상봉과 한미 자유 무역 협정을 지지했다. 또한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에 대한 백신 지원 확대를 촉구하고 일본의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에 맞서는 노력에 동참하기도 했다.
미국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스틸 대사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윤어게인' 세력과 연결돼 있다며 그의 주한 미국 대사 부임을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박동규 미주참여포럼 법률위원장은 지난 4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2019년 워싱턴 이그재미너라고 하는 보수 잡지에 미셸 스틸 박이 직접 기고한 기고문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노력에 대해서 '이것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불복이다'라는 문장이 있다"며 "이 사람의 기본적인 시각은 한반도 문제를 대화나 협력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대결하고 압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현재까지 스틸 대사가 윤어게인 세력과 직접 접촉하거나 연대 움직임을 가져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스틸 대사가 지난 30일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할 때 진보·보수 성향 시민단체 수십 명이 집회를 열었지만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