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철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이 삼성전자 등 그룹사의 하이테크 발주 폭증에 힘입어 역대 최대 신규수주 기록을 내다보고 있다. 하이테크 의존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지만 과거처럼 '그룹사 의존 심화'라는 우려는 나오지 않는 분위기다.
주택 사업을 실적의 한 축으로 키워놓은 데다, 이번 하이테크 물량은 삼성전자의 전례 없는 시설투자와 맞물려 수년간 이어질 메가 프로젝트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그룹사 발주가 줄면 실적 전체가 출렁였던 예전과 의존의 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오세철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이 삼성전자 등 그룹사의 하이테크 발주 폭증에 힘입어 역대 최대 신규수주 기록을 내다보고 있다. 사진은 오사장이 5월28일 서울 동작구 대한전문건설협회에서 열린 공정위-건설업계, 건설산업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협약 체결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7월31일 건설업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주택 사업 순항에 더해 그룹사 하이테크 물량이 장기적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택과 하이테크의 동반 성장으로 외형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은 7월29일 열린 2026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상반기 신규 수주 10조4480억 원 가운데 하이테크 수주가 6조4천억 원으로 절반을 훌쩍 넘었다고 밝혔다. 연초 제시한 하이테크 연간 수주 가이던스 6조8천억 원의 94%를 두 개 분기 만에 채운 것이다.
삼성물산은 콘퍼런스콜에서 "하이테크 사업은 올해 수주 가이던스인 6조8천억 원을 큰 폭으로 상회하는 역대 최고 수준 수주가 예상되며 수주 가이던스 상향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과거 하이테크 최대 수주 기록은 2023년의 12조2천억 원이다. 올해 목표를 두 배 가까이 초과할 수 있다고 예고한 셈이다.
예전의 삼성물산이라면 하이테크 수주 비중 급등은 곧바로 '그룹사 의존 심화'라는 우려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오 사장 체제의 삼성물산은 주택 사업의 몸집이 크게 불어났다는 점에서 과거와 차이를 보인다. 주택 사업 비중이 뒷받침된 상황에서는 하이테크 비중 확대가 삼성물산의 포트폴리오 전체를 키우는 분기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업계에서도 하이테크 사업 확대를 올해 삼성물산 실적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 주목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이테크 수주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삼성물산 중장기 성장 경로로 작용할 것"이라며 "영업이익률이 가장 높은 하이테크 매출 비중이 높아질수록 삼성물산 본업의 이익 성장은 가시성이 높아지는 구조"라고 짚었다.
특히 그룹 차원에서 보면 삼성물산의 하이테크 비중 확대는 일회성 요인을 넘어 중장기적 모멘텀에 가까워 보인다. 삼성전자는 7월30일 콘퍼런스콜에서 2분기 시설투자가 1분기보다 5조5천억 원 늘어난 16조8천억 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삼성물산이 "고객사가 캐파(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팹(생산공장)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삼성물산 수주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라고 밝힌 다음날 삼성전자가 구체적 수치로 이를 확인한 것이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하이테크 최대 고객사인 삼성전자에 이어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의 계열사 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기존 고객사의 발주 일정도 앞당겨지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P4 마감공사와 P5 팹1의 골조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에 P5 팹2의 골조공사가 시작되고 P5 팹1의 1단계 마감공사도 연내 발주될 것으로 예상된다. 후속 마감공사 발주도 예정보다 일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실적에도 하이테크 영향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삼성물산 2분기 매출은 3조9880억 원, 영업이익은 2020억 원으로 영업이익이 2025년 같은 기간보다 71% 급증했다. 영업이익률도 1분기 3.2%에서 5.1%로 뛰었다. 삼성물산은 콘퍼런스콜에서 영업이익률 상승 원인으로 하이테크를 지목하며 3분기에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바라봤다.
삼성물산은 콘퍼런스콜에서 "중장기 관점으로 봐도 하이테크의 대규모 투자가 몇 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주택과 플랜트 등 상품들도 실적 성장이 예상돼 향후에도 삼성물산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큰 폭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간 오 사장은 그룹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삼성물산이 2025년 하이테크 발주 감소로 영업이익이 46% 급감했던 것은 오 사장이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삼성물산 주택 부문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은 오 사장의 사업 다각화와 궤를 같이한다. 2024년 전체 신규수주에서 1조6천억 원을 차지해 비중이 8.9%에 불과했던 주택 부문은 2025년 5조1천억 원을 기록해 비중이 26.0%로 늘어났다. 삼성물산은 2026년에도 주택 부문 가이던스를 6조4천억 원으로 설정했다.
주택이라는 안전판이 갖춰지면서 하이테크 의존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그룹사 발주가 줄면 실적 전체가 주저앉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하이테크 물량이 빠지더라도 주택이 실적 하단을 받쳐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비중이 반년 만에 61%로 올랐지만 의존의 질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이테크 호황이 오 사장의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붙일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수익성 높은 하이테크 물량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이 원전, 데이터센터 등 신사업의 투자금으로 쓰일 수 있어서다. 삼성물산은 올해 데이터센터에서만 2조 원 이상의 수주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미래 다각화의 핵심인 원전 사업의 시간표를 앞당기는 일은 오 사장의 남은 과제로 꼽힌다.
삼성물산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시공 파트너로 참여를 추진하는 루마니아 원전 3·4호기는 올해 말 시공사 선정이 예정돼 있다. 반면 한국전력이 한국형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베트남 원전은 당초 올해 하반기로 예상됐던 시공 파트너 선정이 2027년 초로 미뤄졌다.
삼성물산은 콘퍼런스콜에서 "UAE 원전 프로젝트는 크게 영향력 있는 매출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며 원전이 실적에 본격 기여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