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극단적 선택 유발 정보를 차단하고, 특히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 보도 관리도 강화하는 범정부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국내 청소년 자살율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심리부검과 사후 지원 체계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보도 관리와 유해 정보 차단에 그치지 않고, 학교 현장의 위기 대응과 사후 지원 시스템까지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외부에 쉽게 영향 받는 청소년들. AI 이미지.
모방에 따른 '극단적 선택' 막는다...정부, 온라인 자살정보·유명인 보도 관리 강화
문화체육관광부는 28일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미디어·온라인 분야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대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청소년을 중심으로 온라인상 극단적 선택 유발 정보가 빠르게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해 생산·유통·보호의 세 축을 중심으로 건강한 미디어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악의적인 수익을 목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거나 관련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는 시·도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집중 수사한다는 방침도 포함됐다.
정부는 특히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이나 일가족 사망,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 등과 같이 모방 위험이 큰 사건에 대해서는 언론사에 보도 자제를 요청하기로 했다. 성인보다 청소년이 동일시 성향과 충동성, 또래 및 유명인의 영향, 정체성 혼란 등에 더욱 취약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흔히 '베르테르 효과'로 불린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비롯된 용어로, 작품 속 주인공의 극단적 선택 이후 이를 모방한 젊은이들이 잇따르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선망하던 인물이나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자신을 동일시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오래전부터 청소년층에서 특히 높은 전염성을 보이는 사회심리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청소년 자살 문제의 심각성
국내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을 모두 유명인의 죽음과 직접 연결하기는 어렵지만, 통계는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기준 국내 10~19세 청소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8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4년 4.5명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77.8% 증가했다. 청소년 자살 사망자 역시 2016년 273명에서 2025년 396명으로 늘어나 약 45% 증가했다. '2026 청소년 통계'에서도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14년째 자살로 집계됐다.
국내 연구에서도 베르테르 효과가 일부 확인됐다.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응급의학교실 윤영현 교수 연구팀은 2007년 10월부터 2009년 9월까지 부산지역 4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자해·극단적 선택 시도자 1059명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2008년 10월 유명 여성 탤런트와 2009년 5월 정치인의 극단적 선택 이후 각각 60일 동안의 자해·극단적 선택 시도자와 나머지 20개월 동안의 사례를 비교했다.
그 결과 대조 기간에는 하루 평균 자해·극단적 선택 시도자가 1.4명 수준이었지만, 유명 여성 탤런트 사망 이후에는 하루 평균 2명, 정치인 사망 이후에는 1.9명으로 증가했다.
성별에 따른 영향도 나타났다. 유명 여성 탤런트 사망 이후 60일간 남성 자해·극단적 선택 시도 비율은 52.8%로 대조 기간(50.6%)보다 2.2%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정치인 사망 이후에는 여성 비율이 49.4%에서 50.8%로 소폭 상승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베르테르 효과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자극적인 언론 보도를 지목했다.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반복적인 시청각 자극이 가해질 경우 평정심이 무너지면서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이른바 '방아쇠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징조' 없이 찾아오는 청소년 극단적 선택...사후 대응은 여전히 공백
문제는 청소년 극단적 선택이 성인보다 더욱 예측하기 어렵고 극단적 선택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청소년기는 충동 억제와 장기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뇌의 통제 기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시기다. 이 때문에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뚜렷한 경고 신호 없이 극단적 선택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모방 극단적 선택의 위험성이 더욱 크게 나타나는 이유다.
그러나 이를 대한 대응 체계는 아직 현저히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교육지원청은 학생 극단적 선택 발생 이후 실시하는 사후 지원의 유형이나 건수를 별도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위기관리위원회 소집과 자살 고위험군 선별검사, 유가족 상담 지원 등 사안별 조치를 시행하고 있지만, 실시 건수와 유형별 실적은 관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만큼 유가족과 또래 학생들의 2차 피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개선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족과 학생들 또한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상당한 심리적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한 분석이 없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학생 자살 예방의 핵심으로 꼽히는 '자살 학생 심리부검'도 장기간 중단됐다. 심리부검은 가족과 친구, 교사 면담은 물론 학교생활과 상담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사망 전 위기 신호와 지원 체계의 공백을 살펴보는 조사다. 반복되는 학생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규명하고 학교 현장의 예방·상담 체계를 보완하기 위한 핵심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교육부 정책중점연구소였던 한림대 자살과학생정신건강연구소와 동국대 연구소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자살 학생 37명을 대상으로 심리부검을 실시했지만, 연구소 운영 방식 변경 등의 이유로 이후 사업이 중단됐다.
다만 이러한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교육부는 올해 5월 관련 연구용역을 시작했고, 내년 1월부터는 보건복지부 사업으로 학생 자살 심리부검을 정식 시행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극단적 선택 정보 차단과 언론 보도 관리도 중요하지만, 학생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학교 현장에 예방 대책을 환류하는 제도가 함께 작동해야만 청소년 자살 증가세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