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식 국회의장의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주권자 국민의 선택 문제" 발언으로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28일 국회 사랑재에서 하반기 국회의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뜩이나 야권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개헌을 고리로 집권 연장을 꾀할 것이라는 의심하고 있데 기름을 부은 격이다. 조 의장은 국민의힘이 수개월 동안 만들지 못한 '국민적 의심'을 말 한마디로 단박에 만들어냈다.
파장이 커지자 조 의장은 "헌법 128조 2항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조 의장 이날 페이스북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재차 해명했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도 29일 오전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연임과 관련된 것은 현행 헌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여진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전개될 정치권의 공방과 별개로 이번 사안은 이른바 ‘명픽(이재명 대통령의 선택)’으로 불리며 제22대 후반기 국회의장의 발언으로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일각에서는 조 의장이 '대통령 연임' 발언이 '친명 충성파'의 충성 경쟁에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원인과 별개로 이제 국민은 이 대통령의 본심이 어떨지 궁금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 의장의 발언으로 제22대 국회는 물론 사실상 이재명 정부 집권기간 동안 개헌은 물건너갔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유시민 작가의 '정계개편론'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은 덤이다.
현재 국회 의석 구조상 민주당과 범여권 의석을 다 합쳐도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200석에 미치지 못한다. 한마디로 개헌은 보수정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가뜩이나 개헌에 '유보적' 입장을 가진 보수정당은 이번 조 의장 발언으로 개헌에 반대할 큰 명분을 틀어쥐게 됐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서 "헌법 본문에 명시된 '개헌 당시 대통령에게는 개정된 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독재방지 조항도 숙지하지 못하고 '임기 연장 개헌도 할 수 있다'고 했다"며 "이러면 어떻게 야당과 국민의 동의를 얻는 제7공화국 헌법을 만들 수 있겠냐"라고 꼬집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이날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유시민 작가가 얘기한 정계 개편을 지금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 의원 빼내기라도 해서 지금 이재명 연임을 하겠다는 건가? 이게 막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라며 "이런 발언이 왜 이 타이밍에 나오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가 더욱 뼈아픈 이유는 정권의 핵심 인사이자 ‘명픽’이라는 평가를 받는 조정식 국회의장의 자충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조 의장이 제22대 후반기 국회의장에 도전한다는 것은 일찍부터 정치권에서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그가 국회의장 후보로 나서기 직전에 청와대 정무특보로 임명했다. 그가 명픽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덕분에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국회의장에 선출됐다는 평가는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김성태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SBS라디오 정치쇼에서 "국회의장이 되면 왜 당직을 버리나,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가는 국회의장으로서의 그 무거운 자리의 책무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입법부 수장으로서 그런 역할과 소명을 갖다가 저버리면서 자신을 특보 시켜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한없는 충성심은 자신의 마음속에 가져야 될 문제"라고 일침을 놨다.
조 의장의 '헛발질'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 이 대통령 자신이다. 취임 이후 '민생'과 '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며 야당과의 협치와 소통을 강조해 왔던 이 대통령의 진정성마저 측근의 경솔한 '충성 경쟁'으로 인해 한순간에 의심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더구나 조 의장은 6선으로 민주당 내 최다선 의원이다.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 연임을 언급했을 때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모르고 발언했다면 정치적 경륜이나 국회의장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러운 일이고, 알고도 했다면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권에서도 조 의장의 발언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원로로 평가되는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28일 SBS 뉴스브리핑에서 "(조 의장 스스로)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랬어야지, 정말 또 욕이 나오려고 한다"며 "당 상임고문들하고 점심을 했는데 말 같지 않은 소리다, 어떻게 연임제를 하느냐라고 했다"고 말했다.
파장이 커지자 청와대는 곧장 진화에 나섰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헌법 128조 2항은)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적 합의였다. 대한민국 헌법 128조2항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며 이 대통령도 연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사태는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뢰에 금이 간 것을 치유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임기 끝날 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