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끼리 합의하고 신고하지 않기로 한 뒤 벌이는 무차별 싸움, 이른바 ‘야차룰’이 새로운 학교폭력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겉으로는 승부와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위험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이 7월16일 배포한 가정통신문. ⓒ서울특별시교육청
서울특별시교육청은 16일 ‘신종 학교폭력 스파링·야차룰 예방 안내’라는 제목의 가정통신문을 각 학교에 배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로 합의하면 학교폭력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야차룰’ 형태의 신종 폭력이 발생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야차룰이 유행처럼 번지자, 급기야 가정통신문에도 등장한 것이다.
이어 경북교육청과 경북경찰청도 23일에는 청소년 범죄 위기 경보 ‘스쿨 사이렌’ 제4호를 발령하고 ‘야차룰 스파링 등 상호 집단 폭행’을 주제로 선정했다. 교육 당국과 경찰 모두 야차룰을 학교폭력 문제로 보고 대응에 나선 것이다.
속초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역시 지난 4월 ‘야차룰로 학교폭력입니다’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통해 “놀이도, 스포츠도 아닌 명백한 폭력행위”라며 서로 동의했더라도 학교폭력 조치와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알렸다.
‘야차룰’은 격투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장소 제한 없이 맨손으로 격투를 벌이는 방식에서 유래했다. 다치더라도 신고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고, 체격 차이가 있더라도 당사자끼리 합의하면 싸움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합의된 싸움’이라는 착각은 성인 사회에서도 위험성을 드러낸 바 있다. 2024년 경기도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는 동대표들이 ‘싸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작성한 뒤 몸싸움을 벌였고, 결국 한 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방식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격투기 대결이나 스파링 콘텐츠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힘의 우위를 가진 학생이 약한 학생에게 ‘합의된 싸움’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질될 수 있다. 겉으로는 동의한 것처럼 보여도 또래 압력이나 집단 분위기 때문에 거부하기 어려운 강요된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야차룰’ 문화가 퍼지는 걸까.
경북교육청과 경북경찰청은 23일 청소년 범죄 위기 경보 ‘스쿨 사이렌’ 제4호(사진)를 발령하면서 야차룰의 범죄성을 알렸다. ⓒ경북교육청/경북경찰청
폭력이 경쟁과 놀이의 형태로 포장되면서 폭력에 대한 경계가 낮아지는 현상에 주목한다. ‘야차룰’은 서바이벌 예능뿐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확산된 길거리 싸움 콘셉트, 서로 합의한 뒤 맞붙는 스파링·대결 콘텐츠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폭력과 경쟁을 결합한 콘텐츠 영상을 접한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룰이 있으면 싸워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는 또래 집단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강한 시기여서 싸움을 피하지 않는 모습이 강함이나 인정의 수단처럼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야차룰이 ‘합의’라는 형식을 앞세운다는 점이다. 규칙을 정하고 서로 동의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정당한 대결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힘의 차이와 또래 관계 때문에 진정한 동의가 성립하기 어렵다.
특정 학생에게 “야차 뜨자”고 요구하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행위 자체가 괴롭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싸움이 끝난 뒤에도 폭력이 영상으로 남는다는 점이다. 촬영한 영상을 온라인에 퍼뜨리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2차 가해이며, 내용과 유포 방식에 따라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야차룰과 같은 신종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합의된 폭력’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피해를 입었거나 주변에서 관련 상황을 목격했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보호자와 교사 등 어른에게 알리거나 117 학교폭력 신고·상담센터를 통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