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에 악재가 겹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동혁 대표 사퇴론은 이전만큼 힘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장 대표의 리더십이 회복됐다기보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투표 관리 논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유죄 선고,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의 멱살잡이 사건이 잇따라 그에게 당대표직 유임의 명분을 안겨주고 있다.
국민의힘을 위기로 몰아넣은 삼중악재가 정작 장 대표 자신의 생존에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선출직 공직자 평가혁신 TF 임명장 수여식 및 1차 회의'에서 위원장인 정희용 사무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국민의힘의 관심은 이제 장 대표 거취보다 윤 전 대통령 1심 유죄 판결에 따른 397억 원 반환 가능성과 윤리위원회(윤리위) 징계 정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당 윤리위가 전날 진종오·조경태·권영진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 개시를 결정하자 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사당화를 위한 겁박스러운 징계정치"라고 반발했다. 조 의원 역시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동혁 대표의 당권을 지키기 위한 면피용 정치 보복"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의 반발에도 윤리위는 질의서 발송과 본인 소명 절차를 거쳐 늦어도 다음 달 징계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날 선관위 선거소청 심리에 직접 나선 데 이어 징계 절차까지 예정대로 진행되면서, 장 대표는 더 이상 당에서 겉도는 찬밥 신세가 아닌 당면 현안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장 대표를 향한 퇴진 압박은 지난달까지 거세게 이어졌다. 사퇴론은 올해 1월 한동훈 의원 제명 이후 불거졌고, 2월 윤 전 대통령의 1심 판결 뒤 장 대표가 '절윤' 요구를 거부하면서 확산했다. 6·3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는 선거 책임론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장 대표를 향한 사퇴 요구는 실질적 퇴진 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동력을 잃고 있다. 당헌 당규상 장 대표를 강제로 끌어내릴 수단이 마땅치 않은 데다, 그동안 퇴진을 요구해 온 비당권파·소장파·친한(친한동훈)계 의원들도 지도부 총사퇴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관철할 집단행동까지는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윤 전 대통령이 전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에서 '허위사실 공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1심 판결이 대법원까지 이어져 윤 전 대통령의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397억 원을 토해내야 한다.
이처럼 각종 악재를 수습할 책임이 장 대표에게 집중되면서 역설적으로 '산적한 과제를 떠안은 당대표' 이미지가 부각되고, 이것이 동정 여론 형성이나 지지세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장 대표과 대립해온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1심에서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은 일도 장 대표에게 '호재'가 됐다. 벌금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오 시장은 시장직을 잃고 향후 5년간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장 대표로서는 자신의 당내 입지를 위협해 온 큰 축이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앞줄 왼쪽 두 번째)가 25일 경남 김해시 내동 거북공원에서 열린 6·3 참정권 침해 규탄 김해시민 집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
윤 전 대통령과 오 시장의 유죄선고에 '반사이익'뿐 아니라, 장 대표가 지방선거 직후부터 매달려온 선관위 문제에서도 그의 주장에 힘을 싣는 정황이 새로 확인됐다. 전날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방선거 당일 전국 56개 구·시·군 선관위가 시간대별 투표자 수를 모두 72차례 정정했다.
장 대표는 같은 날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소청 첫 심리에 출석해 이 같은 전산 수정 사례를 근거로 재선거를 주장했다. 장 대표로서는 그간의 선관위 문제 제기가 터무니없지만은 않았다고 내세울 근거가 생긴 셈이다.
권영진 의원이 23일 상임위원회 간사 배정에 항의하며 정점식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은 사건은 장 대표가 당내 기강을 다잡을 가장 선명한 명분이 됐다.
그동안 추진돼 온 친한계·소장파 징계안이 계파색과 무관한 권 의원 사건과 함께 묶이면서, 지도부는 표적 징계라는 반발 부담을 덜게 됐다.
윤 전 대통령의 유죄 판결은 장 대표가 당 재정 위기 대응의 구심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열어줬고, 선관위의 잇단 관리 오류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으며, 권 의원 사건은 당내 반대 세력을 묶어 징계할 기회를 열어줬다.
여기에 오 시장 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서로 무관한 악재들이 하나같이 장 대표의 정치적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장 대표가 2028년 8월까지 임기를 완주하는 시나리오도 전보다 현실성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