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1분기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률 71.5%를 기록하면서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성을 확보했는데 2분기에도 이를 다시 한번 웃도는 경이로운 기록을 낸 것이다. 2분기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메모리 경쟁사인 마이크론(영업이익률 80.4%)보다는 낮았지만 반도체업계 ‘수익성 바로미터(가늠자)’로 여겨지는 TSMC(60.3%)와 엔비디아(65.6%)를 10%포인트 이상 웃돈 수치다.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기존 시장기대치에는 6.4% 미치지 못한 실적이었지만 이익의 기반이 된 구체적 요인들을 보면 중장기 기대감을 지니게 하는 요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요 제품들의 가격 상승세가 다소 둔화했지만 메모리 수요가 여전히 단단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전 분기(1분기)와 비교한 SK하이닉스의 2분기 제품 출하량 증가율을 보면 D램이 한자릿수% 후반, 낸드플래시가 10% 중반으로 집계됐다. 평균판매가격(ASP)은 D램이 30%, 낸드가 50% 중반가량 상승했다. 앞서 1분기에는 2025년 4분기와 비교해 D램 출하량은 유지됐고 낸드 출하량은 감소했다. 반면 ASP는 각각 60%, 70% 상승했다.
ASP 상승 기울기가 2분기 들어 완만해졌지만 이는 메모리 가격이 이미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던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풀이된다. 반면 메모리 수요가 재차 증가했는데 SK하이닉스의 호실적이 단순한 가격 효과가 아니라 실제 고객사들의 구매가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SK하이닉스는 2026년 하반기에도 D램과 낸드 출하량 증가율이 각각 20% 중반, 10% 후반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분기에도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면서 곽노정 사장은 순현금 목표를 조기에 달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말 기준 순현금 69조3700억 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1분기 말 35조100억 원과 비교해 1개 분기 만에 2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하는 현금이 87조9600억 원으로 같은 기간 33조 원 이상 증가한 반면 장단기차입금과 유동성장기부채 등을 더한 차입금은 오히려 7천억 원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2025년 3분기 말 기준 순현금으로 돌아선 뒤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재무 안정성을 갖춰가는 것이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곽 사장이 제시한 순현금 100조 원이라는 기준을 4개월 만에 채울 수 있게 됐다. SK하이닉스가 7월14일자로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에 따라 40조 원을 조달하게 되면서 산술적으로 순현금 100조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곽 사장은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순현금 100조 원을 확보하는 등 재무 건전성을 개선하고 주주환원 사이 균형을 유지하면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곽 사장의 순현금 100조 원 기준은 재무 안정성을 확보해 중장기 투자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고 주주환원 여력도 넓힐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시장 신뢰를 얻겠다는 상징적 수치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ADR 상장으로 조달한 40조 원을 모두 증설과 장비 구매에 활용하는 등 중장기 투자를 앞두고 있다. 지속적으로 자금 유출 요인이 있지만 2분기에 확인했듯 역대급 영업이익이 지속하면서 순현금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의 전망을 종합하면 2027년 말 SK하이닉스의 순현금은 300조 원 안팎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흐름에 힘을 더하는 SK하이닉스의 행보로 중장기 리스크를 제어하고 꾸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장기공급계약(LTA)이 꼽힌다. 공급사와 장기계약을 맺으려고 하는 고객의 요구가 강해진 것은 AI 생태계에서 메모리 수요 증가가 지속할 것이라는 근거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는 핵심 고객을 포함해 10여 개 고객과 LTA 협상을 마무리했고 현재 주요 고객들과 추가 논의도 이어가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곽 사장이 SK하이닉스의 재무 건전성 기조를 빠르게 안착하는 것은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투자 확대’의 실행 가능성과 속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최 회장은 메모리 병목 현상을 단순히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의 이익 극대화라는 기회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다. 지속해서 메모리 공급 확대가 중요하다고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공급이 확대되면 SK하이닉스가 얻는 이익은 2026년 들어 나타나고 있는 폭발적 수준보다 낮아질 공산이 크다. 최근 70%가 넘는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영업이익률의 최대 근거는 공급부족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 회장의 시선은 AI 산업의 중장기를 바라보고 있다. 당장의 메모리 판매를 넘어 SK그룹 AI 사업 전반의 경쟁력과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 구축을 더 중요한 과제로 바라보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7월13일(현지시각) 미국 테크 전문플랫폼 식스파이브미디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SK그룹과 SK하이닉스에 투자하기를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현재 AI 비용은 너무 높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 회장은 “메모리가 AI 인프라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가격이 너무 높아 부담이 되고 있고 공급도 부족하다”며 “훨씬 낮은 비용으로 운영되고 훨씬 효율적 토큰(AI가 처리하는 데이터의 기본 단위)을 생성할 수 있는 새로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이 이처럼 ‘AI 비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배경에는 SK하이닉스를 넘어 그룹 차원에서 전력투구하고 있는 ‘AI 인프라’ 사업의 전략적 중요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HBM을 비롯한 메모리 가격 상승은 반도체 호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SK그룹이 막대한 공을 들이고 있는 AI 데이터센터(AIDC) 구축과 운영 사업에는 투자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기도 하다. SK그룹은 통신과 에너지를 아우르는 계열사 역량을 결집해 데이터센터 설계, 효율적 에너지 관리, 액침냉각 기술 등을 포괄하는 종합 AI 인프라 솔루션 기업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최 회장은 메모리 판매 수익에만 매몰되지 않고 SK그룹의 AI 밸류체인 전체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SK하이닉스가 메모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SK텔레콤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들이 AI 데이터센터와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는 구조를 통해 그룹 전반이 글로벌 생태계에서 한가운데 서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곽 사장은 SK하이닉스의 2026년 투자 규모를 2025년보다 10조 원 이상 늘어난 40조 원 후반으로 설정하고 공급 확대에 무게를 두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SK하이닉스는 29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청주 M15X 양산 일정을 앞당기고 2027년 초 용인 1기 팹(Fab) 클린룸 오픈 뒤 생산능력을 신속하게 확대할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생산 거점은 국내외를 구분하기보다 전력, 용수, 인력, 공급망, 고객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