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농가에 '이번 주 거래 참고가격'을 알려주던 대한산란계협회가 결국 해산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이 가격 정보가 농가들의 실제 거래가격 기준이 되면서 경쟁을 제한한 담합이라고 판단해 설립허가를 취소했다. 반면 협회는 시장 정보를 제공한 것일 뿐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대한산란계협회의 설립허가를 취소했다고 29일 밝혔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계란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농림축산식품부는 29일 사단법인 대한산란계협회의 설립허가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협회가 법인 설립 당시 부여된 허가 조건을 위반하고 계란 산지가격을 결정·통지해 공정한 가격 경쟁을 제한하고 공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민법 제38조에 근거했다. 해당 조항은 법인이 목적 외 사업을 하거나 설립 허가 조건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해치는 행위를 한 경우 주무관청이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산란계협회가 계란 산지 거래 기준가격을 정해 회원 농가에 통지한 행위를 사업자단체 금지행위에 해당하는 담합으로 판단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9400만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협회가 제시한 가격이 실제 거래가격의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개별 농가 간 가격 경쟁이 제한됐다고 봤다.
농식품부는 공정위 처분뿐 아니라 설립허가 당시 부여한 조건을 위반한 점도 이번 결정의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농식품부는 2023년 협회의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하면서 계란 시세와 가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산지가격 고시를 중단할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그 뒤 협회가 해당 조건의 삭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올해 1월까지 산지가격을 지속적으로 결정·통지한 만큼 허가 조건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농식품부는 이번 조치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생산자단체를 제재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처분과 허가조건 이행 여부, 청문 절차에서 제출된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이며, 법과 원칙에 따른 행정절차라는 입장이다.
산란계협회는 정부 판단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협회는 회원들에게 특정 가격을 강제한 것이 아니라 생산자와 유통업체가 거래 협상에 활용하는 '참고가격'을 제공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협회에 따르면 참고가격은 전국 산지의 거래 상황과 수급을 반영한 시장 정보로, 생산자와 유통업체가 거래 가격을 협상하거나 병아리 입식, 노계 도태 등 생산 계획을 세우는 기준으로 활용돼 왔다. 거래가격을 강제하거나 회원들에게 동일한 가격으로 거래하도록 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계란은 하루 5천만여 개가 생산되는 연속 생산 품목으로 일반 농산물처럼 도매시장을 통해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가 아니어서, 생산자단체가 제공하는 참고가격이 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을 수행해 왔다는 것이 협회의 주장이다.
협회는 또 202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제공한 참고가격이 평균 판매원가보다 낮은 수준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담합으로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정부가 가격 고시를 중단시킨 이후에도 계란 가격은 오히려 상승했다며, 정부 주장대로 참고가격이 가격 상승의 원인이었다면 가격 정보 제공이 중단된 뒤에는 가격이 안정됐어야 하지만 실제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설립허가가 취소되면서 협회는 법인 해산 및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다만 회원 농가의 생산과 유통 활동이 즉시 중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영리법인으로서의 법적 지위와 정부와의 공식 협의 창구 역할에는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협회는 허가 조건 자체가 법적 근거 없이 부과된 위법한 조건이라고 주장하며 설립허가 취소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하기로 했다. 앞서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에 대해서도 지난 16일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