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부족과 지방소멸 위기로 지자체마다 재정난을 호소하는 가운데, 정작 도심 곳곳에서는 시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보여주기식 사업에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대구 신천 프러포즈존 조감도(왼쪽). 김두겸 울산시장이 2024년 10월7일 오후 울산시청 마당 텃논에서 열린 벼 베기 행사에서 벼를 수확하고 있다. ⓒ대구시/울산시
시설을 만드는 데는 막대한 예산을 쓰지만 이후 활용성이 떨어지고 유지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 전시행정의 씁쓸한 이면을 짚어봤다.
"고백할 장소 없어서 결혼 안 하나?" 143억 원 투입된 대구 신천 프러포즈존
홍준표 전 대구시장(왼쪽).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2024년 6월7일에 올린 페이스북 글이다. ⓒ연합뉴스/홍준표 페이스북
추경호 대구시장은 최근 논란이 이어진 '신천 프러포즈존' 조성 사업을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미 전체 예산 143억 원 가운데 89억 원이 투입됐고 골조 공사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사업을 중단할 경우 매몰 비용이 발생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다만 '신천 프러포즈존'이라는 명칭은 시민 의견 수렴을 거쳐 변경하려 한다고 대구시는 밝혔다.
해당 사업은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신천 수변공원화 사업’의 일환이다. 대구시는 신천 둔치 일대에 지름 45m 규모의 수상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총 143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홍 전 시장은 2024년 6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프랑스 센강 퐁네프 다리에 가보면 선남선녀들이 평생 헤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자물쇠를 다리에 걸어두고 열쇠는 센강에 버린다"며 "우리 대구도 그런 프로포즈 명소를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사업 발표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프러포즈 장소가 없어서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 지원이나 일자리 문제 해결에 예산을 쓰는 것이 우선 아니냐"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청년 인구 감소와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결혼을 망설이는 원인이 프로포즈존의 부족이 아닌 경제적 부담과 주거 문제에 있다는 점에서 사업 방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취약계층 지원이나 교통약자 정책 등 시민 생활과 직결된 분야의 예산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효과가 불분명한 이벤트 공간 조성에 거액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이 뒤따랐다.
"산업도시 울산에서 왜 논을?" 울산시청 앞마당에서 벼농사
김두겸 울산시장이 2024년 10월7일 오후 울산시청 마당 텃논에서 열린 벼 베기 행사에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울산시
김상욱 울산시장은 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라이브 방송에서 '시청의 벼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시민 질문에 "당장 뽑아버리고 싶은데 뽑는 것도 세금"이라며 "보고 있으면 답답한데, 바꾸려니 세금이 또 들어간다"고 답했다. 이미 조성된 시설을 철거하거나 변경하는 데에도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현실이 전시성 사업의 또 다른 부담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문제가 된 '논 정원'은 김두겸 전 울산시장 재임 당시인 2024년에 청사 내 햇빛광장 조경 공간에 조성됐다.
울산시는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215㎡ 규모의 논을 만들고 벼를 심었으며, 미꾸라지와 우렁이를 방생하는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다고 홍보했다.
이후 시장과 공무원들이 직접 모내기와 벼 베기에 참여했고, 수확한 쌀은 '청렴미'라는 이름으로 소개됐다.
산업도시인 울산 시청 한복판에 논을 조성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이 이어졌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사진 찍기용 행사 아니냐", "울산의 대표 사업이 벼농사냐", "공무원들이 농사를 짓는 것 아니냐" 등 비판이 나왔다.
"야경보다 바퀴벌레로 유명해져" 600억 원 들인 '서울로7017', 관리 논란
2017년 8월1일 오전 서울로 7017의 보행로에 콘크리트 균열 보강공사의 흔적이 거미줄처럼 얽힌 모습으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서울로 7017 바닥에 균열이 발생한 80여 곳에 대해 보강공사를 벌였다. ⓒ연합뉴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도시재생 1호'로 꼽히는 서울로7017이 최근 야경보다 바퀴벌레로 더 주목받고 있다.
지난 6월 한 외국인 관광객이 SNS에 공개한 '밤에 서울을 산책하면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서울로7017 화단과 벤치 주변, 보행로 곳곳을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기어 다니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 속 바퀴벌레는 일본바퀴(집바퀴)로, 개체 수가 늘어나면 관리가 쉽지 않은 종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서울시는 현장 방역에 나섰다.
서울로7017은 노후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시민들이 걸을 수 있는 보행공원으로 재탄생시키겠다는 취지로 추진됐다. 사업비는 약 600억 원이 투입됐다.
당시 서울시는 차량 중심 공간을 시민 공간으로 바꾸는 도시재생 모델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업 초기부터 우려도 있었다. 주변 상인들은 차량 통행 변화에 따른 상권 영향을 걱정했고, 일부에서는 노후 시설을 유지하는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여름철 그늘 부족과 시설 관리 문제 등이 꾸준히 지적됐다. 최근에는 대형 화분 틈새와 바닥 공간 등에서 바퀴벌레가 발견되면서 방역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서울로7017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개방형 공간인 만큼 해충 관리에도 제약이 있다. 반복적인 강한 살충제 사용이 어려워 지속적인 관리와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드는 건 한 번이지만, 관리에는 계속 세금이 더 들어간다
전시성 사업의 문제는 시설을 만드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성한 뒤에도 유지·관리 비용은 매년 반복해서 투입된다. 사업 타당성과 활용 방안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는다면 시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방재정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지방소멸과 세수 감소로 재정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우선해야 할 것은 시민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분야에 예산을 집중하고 조성 이후의 운영과 관리까지 책임지는 행정이다.
결국 행정의 성과는 시민의 세금으로 만든 공간이 얼마나 오래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시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든 시설이 시간이 지나 세금으로 유지해야 하는 애물단지가 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