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를 떠돌던 고양이는 어느 날 직업이 생겼고, 작은 시골역은 사람이 붐비는 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사람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특별한 직업, 바로 '고양이 역장'이다.
2015년 8월11일 2대 고양이 역장 '니타마'가 1대 역장 '다마'의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일본 와카야마현의 작은 시골역인 기시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양이 역장의 탄생지다. 2007년부터 와카야마전철 기시가와선 기시역에서는 고양이가 역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와카야마시와 기노카와시를 잇는 총연장 14㎞의 짧은 지방 철도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일본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시가와선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1916년 개통한 이 노선은 오랜 역사를 자랑했지만, 이용객 감소로 경영난에 시달렸다. 결국 2004년 당시 운영사는 노선 폐지를 결정했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철도를 살리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나섰고, 지방정부는 새로운 운영자를 찾았다.
그 결과 2006년 와카야마전철이 기시가와선 운영을 맡으면서 노선 폐지 위기는 일단 넘겼다. 하지만 이용객 감소와 경영난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기시역 옆 가게 주인이 돌보던 고양이들이었다. 역 주변 정비가 진행되면서 고양이들이 지내던 공간도 사라질 상황에 놓였다. 가게 주인은 고양이들이 계속 역 주변에서 살아갈 방법이 없는지 회사 측에 문의했다.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해결책이 등장했다. 역의 운명을 바꾼 삼색 고양이 '다마'였다. 운영사 사장은 다마를 기시역 역장으로 임명했다.
와카야마(和歌山)전철은 2015년 6월22일 자사가 운영하는 기시가와선의 무인 역인 기시 역의 마스코트였던 암컷 삼색 고양이 '다마(사진)'가 죽었다고 같은 달 25일 밝혔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연합뉴스
"고양이가 역장이 됐다"는 소식은 일본 전역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작은 역장 모자를 쓴 채 개찰구 앞에 앉아 승객을 맞는 다마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기시역으로 몰려들었다. 다마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낮 시간대에 역장 업무를 맡았고, 개찰구 자리에 앉아 승객들을 맞이하고 배웅했다.
고양이 역장이 만든 변화는 놀라웠다. 취임 1년 만에 기시역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고, 이는 2010년 역사 개축으로 이어졌다. 새롭게 지어진 역사는 고양이 얼굴을 닮은 지붕으로 꾸며졌고, 다마를 위한 전용 역장실까지 마련됐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다마의 시대도 끝이 찾아왔다. 다마는 2015년 세상을 떠났고, 장례식에는 3천 명이 넘는 팬들이 몰려와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이후 다마에게는 '영원한 명예 역장'이라는 칭호가 수여됐다.
다마가 남긴 발자취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폐선 위기였던 작은 시골역은 어느새 '고양이 역장님을 보러 가는 여행지'가 됐다.
2015년 6월28일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의 명물이었던 '고양이 역장' 다마의 장례식이 열렸다. 이날 장례식에는 약 3천명이 다녀갔다. ⓒ연합뉴스
고양이 한 마리가 불러온 관광객들은 철도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주변 상권에서도 지갑을 열며 지역경제를 살렸다.
간사이대학 미야모토 가쓰히로 명예교수는 다마가 역장으로 취임한 첫해 경제효과를 약 11억 엔(약 105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후 다마 열풍이 이어지면서 일본 언론에서는 누적 경제효과가 100억 엔(약 950억 원)을 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고양이 역장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다마의 뒤를 이은 주인공은 삼색 고양이 니타마다. '두 번째 다마'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니타마는 사람과의 친화력, 모자 착용에 대한 적응력 등 역장 역할에 필요한 자질을 인정받고 후임 역장으로 발탁됐다.
2018년에는 또 다른 삼색 고양이 욘타마('네 번째 다마'라는 뜻)가 이다키소역의 고양이 역장으로 합류하며, 3대 고양이 역장의 계보를 이어갔다. 이름에는 '네 번째 다마'라는 뜻이 담겨 있지만, 역장 계보에서는 세 번째 자리를 잇고 있다.
또한, 지난 1월 새롭게 공개된 로쿠타마('여섯 번째 다마'라는 뜻)는 차세대 고양이 역장을 꿈꾸는 후보생으로 훈련 과정을 거쳐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나카노초역 '고양이 역장' 나카노 씨. ⓒ엑스 계정
다마가 만든 고양이 역장 문화는 다른 지방 철도로도 퍼져나갔다. 최근에는 지바현 조시전철 나카노초역에도 새로운 고양이 역장이 탄생했다. 일본 지역 언론들은 이를 두고 길고양이의 '출세'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고양이 역장 '나카노 씨'는 2025년 10월 철도역 인근에서 발견된 고양이었다. 당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쇠약했던 새끼 고양이는 역 직원들의 보살핌 속에 건강을 회복했다.
수습 기간을 거친 나카노 씨는 지난 5월 나가노초역 고양이 역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조시전기철도 사장은 "새로운 사장으로 출발하는 저에게도 나카노 씨가 앞으로 큰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탈 이유가 없던 역에 찾아갈 이유를 만든 고양이
2026년 7월3일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7월4일 엑스 계정에 올라온 나카노 씨. ⓒ나카노 씨 엑스 계정
나카노 씨의 엑스(X) 계정에는 마치 연예인의 스케줄표처럼 출근 일정이 정기적으로 공개된다. 올해 7월3일에는 역장 업무 대신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팬들과 함께 한 살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이처럼 일본의 작은 지방 철도들은 이제 승객에게 탈 이유가 아닌 찾아갈 이유를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기 위해 작은 역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역장을 만나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관광객의 발걸음은 지역 상권과 관광을 살리는 힘이 된다. 결국 철도를 되살린 것은 고양이 한 마리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 고양이에게 부여한 이야기와 의미가 사라져가던 공간의 가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고양이 역장의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지역을 살리는 힘이 반드시 거대한 개발 사업이나 화려한 시설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다시 발걸음을 이끌어낼 이야기 하나가 지역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작은 시골역에서 시작된 '묘(猫)한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