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는 죄가 없다. 사투리를 쓴 사람도 잘못이 없다. 지역의 언어를 혐오의 언어로 오염시킨 데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노'라는 짧은 어미 하나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 혐오의 언어인가, 사투리인가를 두고 '사투리 감별'이 시작됐다. 언론은 방언학자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찾았고, 지역 주민들은 평생 써온 말의 기억을 꺼내 들었다.
"무섭노"를 일베식 표현이라고 판단했던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도 한국방언학회장의 설명을 들은 뒤 입장을 바꾸고 사과했다.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 ⓒ연합뉴스
조 이사는 9일 페이스북에 "온라인 대화 속 생략이 많은 젊은 세대의 언어에 대해 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제 발언으로 리센느 그룹의 아티스트 원이님이 상처를 받았을까 걱정된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앞서 조 이사는 지난 7일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 출연해 "저는 경상도 사람"이라며 "(‘무섭노’가) 일베식 표현은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댓글에는 "경상도인을 일베로 몰아가냐"는 등의 비판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조 이사는 "(당시) 제 발언의 요지는 구조적인 문제인 젊은 층의 일베식 '노' 어미 사용을 개인의 책임으로 좌표 찍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자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부산 출생으로 대구에서 5살 때부터 초중고, 대학교를 다 나와 경상도에서 25년을 살았다"며 "그 뒤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고 있는데, 해당 상황에서처럼 '~노'가 쓰이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당시 '무섭노'를 일베식 표현으로 판단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조 이사는 전문가의 설명을 들은 뒤 자신의 판단에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조 이사는 "티비시(TBC) 방송의 김덕호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TBC가 지난 8일 유튜브 계정에 '[팩트체크] 리센느 원이 일베 논란 종결? 방언학자가 직접 설명하는 "무섭노"'라는 제목의 영상(사진)을 올렸다. ⓒTBC뉴스 유튜브 계정
대구·경북 지역 방송사 TBC는 지난 8일 한국방언학회장 김덕호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교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경상도 방언에서 사용되는 '~노'의 쓰임을 짚었다.
김 교수는 "왜라고 하는 의문사가 있는 경우에는 '와이리 무섭노'는 실제로 자연스러운 표현"이라면서도 "그런데 이제 와이리를 생략해 버리고 무섭노라고 해버리는 경우, 요즘 젊은 분들은 생략하고 쓸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대 간의 방언 사용 형태의 차이에 따른 오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베 등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정 의미가 덧씌워진 표현과, 지역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용돼 온 방언은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지 주민들 역시 '무섭노'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8일 경남신문은 유튜브 채널에 '리센느 원이 일베(일간베스트) 논란 종결할게요(거제 80년 토박이 할머니 피셜)'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취재진은 해당 논란을 알지 못하는 거제 할머니 5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평소에 '무섭노'라는 표현을 많이 들어봤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주민들은 "'무섭노'나 '무섭다'나 다 그런 말 아니냐", "괜찮노, 사투리 아이가. 무섭노 하는 거기, 그거 완전 사투리지"라고 답했다. 한 거제 주민은 "내가 무서움을 많이 탄다"며 "그럼 주변에서 '뭐가 무섭노' 그 소리를 잘한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는 6월28일 ' 미나미의 본모습'이라는 제목의 영상(사진)을 올렸다.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 원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논란은 6월28일 공개된 리센느 원이의 유튜브 콘텐츠에서 시작됐다. 일본인 멤버 미나미의 고향집을 찾은 영상에서 PD가 "뭐야 무섭노?"라고 하자 원이가 "무섭노. 조명부터 무서운데"라고 답한 장면이 문제가 됐다.
해당 장면은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를 연출한 김현지 PD가 지난 1일 엑스(X, 옛 트위터)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으로 번졌다.
김 PD는 "호평받는 유튜브 클립 하나 봤는데 여성 아이돌과 PD가 사이좋게 '노노' 주고받고 있어서 무척 속상했음"이라며 "일상화된 '일베식 노' 사용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달라"고 적었다.
이후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서로 다른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됐다.
코미디언 김시덕이 지난 5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다. ⓒ김시덕 인스타그램 계정
정치권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상도 출신 코미디언 김시덕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리센느 원이님이 썼던 무섭노는 의문형종결어미가 맞다"며 "언제 부터 -노 라는 사투리를 쓰면 일베로 몰아가는 분들이 있어서 머라노 와이카노 일베 아이다 라고 대꾸를 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깊게 알아보면 부울대 같은 광역시 사투리에서도 다르고 더 깊게 들어가면 마창진(마산·창원·진해) 거통남(거제·통영·남해) 소도시 사투리도 서로 다른점이 있고 심지어 할매 할배 들이 쓰시던 사투리와 요즘 세대들이 쓰는 사투리가 또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