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또 한 번 실사 영화의 벽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자사 최고 인기 애니메이션 IP 가운데 하나인 '모아나'다. 개봉 전부터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의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흥행 전망과 평단의 평가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디즈니 실사 영화의 최대 약점으로 꼽혔던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 캐스팅' 논란에서 벗어났는데, 관객들은 이제 실사화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평단의 큰 실망 속에서도 영화 '모아나'는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 AI 이미지.
10일(현지시각) 미국 전여겡서 개봉한 실사 영화 '모아나'는 모투누이 섬의 소녀 모아나가 물고기가 사라지고 코코넛이 썩는 등 저주에 빠진 고향을 구하기 위해 전설의 영웅 마우이를 찾아 나서고, 그와 함께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며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현재 '모아나'는 북미에서 개봉 첫 주말 약 4천만 달러의 오프닝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절대적인 수치만 보면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디즈니가 공들여 키워온 대표 프랜차이즈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출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 '모아나'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평단의 반응은 더욱 냉담하다. 현재 로튼토마토 신선도는 37%, 메타크리틱은 42점을 기록 중이다. 물론 가족 영화는 평론가 평점이 흥행을 좌우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개봉 전부터 예매 추이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만큼, 첫 주말 박스오피스에서도 예상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모아나'가 그동안 디즈니 실사 영화의 고질적인 논란이었던 'PC 캐스팅'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작품이라는 점이다. 모아나 역의 캐서린 라가아이아와 마우이 역의 드웨인 존슨은 원작 캐릭터와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공개 당시부터 호평을 받았다. 과거 배우 선정 문제로 홍역을 치뤘던 실사화 영화 '인어공주'(2023)와 '백설공주'(2025)의 '블랙워싱'(고증적/작품상 등장하면 안 되는 곳에 흑인 혹은 유색인종을 삽입하는 것을 뜻함)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생동감을 잃은 CG
'모아나'에 등장하는 캐서린 라가이아(위)와 드웨인 존슨.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실사영화 '모아나'가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로 CG가 가장 먼저 꼽힌다.
디즈니 실사영화 대다수는 원작 애니메이션이 지녔던 가장 큰 강점을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는 공통된 지적을 받아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역동적인 연출, 과장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표현은 실사화 과정에서 현실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은 한계는 2019년 개봉한 실사 '라이온 킹'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해당 작품은 글로벌 흥행에는 크게 성공했지만, 사실성을 극대화한 영상미를 추구한 결과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표정과 풍부한 감정 표현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술적으로는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줬지만, 오히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이질감을 안기며 원작이 지녔던 생동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모아나'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바다로 떠난 이후 등장하는 배경과 생명체 대부분이 CG로 구현되다 보니, 현실의 배우가 연기하는 모아나와 마우이가 애니메이션 배경 위에서 연기하는 듯한 이질감이 생긴다는 반응이 나온다.
원작을 뛰어넘지 못한 음악
실사화 '알라딘'에서 삽입곡 'Speechless'를 불러 큰 존재감을 과시한 자스민 공주(나오미 스콧).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음악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원작의 대표곡인 'How Far I'll Go', 'You're Welcome'은 새로운 배우들의 목소리로 다시 들을 수 있지만, 새롭게 추가된 'Along the Way'는 기존 명곡을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며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디즈니 실사 영화가 새로운 음악으로 성공한 사례가 이미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더한다. 2019년 개봉한 '알라딘'에서는 자스민 공주(나오미 스콧)의 신곡 'Speechless'가 큰 화제를 모으며 영화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고, 작품의 흥행과 화제성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결국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정을 이끌던 음악적 매력 역시 실사화 과정에서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고, 이는 기존 실사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한계를 다시 드러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왜 지금 실사화했나'라는 근본적인 의문
'노트르담의 꼽추'(왼쪽부터), '포카혼타스', '헤라클레스'. 이들 애이메이션 영화는 아직 실사영화로 구현되지 않았다. ⓒ브에나 비스타 픽처스 디스트리뷰션
무엇보다 관객들이 가장 많이 제기하는 문제는 영화의 완성도 이전에 실사화의 필요성이다.
2016년 개봉한 원작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전 세계 약 6억43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두며 디즈니의 대표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았다. 이어 2024년 개봉한 '모아나 2'는 글로벌 박스오피스 10억 달러를 돌파했고, 디즈니는 이미 '모아나 3'를 제작해 2028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모아나'는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야 하는 IP가 아니라, 지금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프랜차이즈다.
그럼에도 원작 개봉 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실사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특히 아직 실사화되지 않은 '포카혼타스'(1995), '노틀담의 꼽추'(1996), '헤라클레스'(1997) 같은 고전 애니메이션이 남아 있고, 제작이 추진 중인 '라푼젤' 역시 원작이 '모아나'보다 6년 먼저 개봉했다는 점은 이러한 의문을 더욱 키운다.
디즈니, 실사 영화의 숙제를 다시 마주하다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동상. ⓒAFP=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디즈니가 이미 흥행이 검증된 IP를 활용해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바로 그 안전지향 전략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이 됐다. 원작을 지나치게 충실하게 답습한 탓에 새로운 해석이나 창의적인 연출을 보여주지 못했고, 개봉한 지 오래되지 않은 작품인 만큼 향수를 자극하기에도,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기에도 애매한 위치에 놓였기 때문이다.
한 해외 관객이 "AI에게 '모아나 실사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나올 법한 영화"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갖췄지만, 왜 굳이 지금 이 작품을 실사로 다시 만들어야 했는지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모아나'는 디즈니 실사 영화의 핵심 과제가 더 이상 캐스팅 논란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관객들이 이번에 원한 것은 원작을 그대로 복제한 실사가 아니라, 실사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를 부여줄 새로운 해석이었다.
요컨대 '모아나'는 PC 캐스팅 논란을 피해 갔음에도 CG, 음악, 연출, 그리고 실사화의 당위성이라는 기존 실사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낸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