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SF소설 중국 작가 하오징팡(郝景芳)이 최근 준비한 신작 '은하학원' 집필에 인공지능(AI)을 절반가량을 활용했다 밝히면서 중국 문단이 술렁이고 있다.
이는 곧 '휴고상 수상작가마저 인공지능에 의존한다'는 식으로 확산되면서 논란을 일파만파 키웠고, 하오징팡은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SF소설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받은 중국 작가 하오징팡. ⓒ 연합뉴스
그는 자신이 말한 '50%'는 원고를 인공지능이 절반 썼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관 자료의 보완이나 인물 설정의 정리, 줄거리 아이디어 확장 등 30여개로 세분화된 작업단계 가운데 인공지능이 관여한 업무의 비중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핵심 구상이나 감정표현, 최종적 문장 구성은 전부 자신이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쟁점이 '인공지능이 얼마나 개입했는가'라는 양적 질문에서 'AI개입 사실을 독자에게 사전에 투명하게 알렸는가'라는 신뢰의 영역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료조사에서 검색엔진을 쓰듯이 인공지능을 도구로 썼다고 하더라도, 그 경계를 독자가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기만'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질문은 문학에서 시작됐지만 비슷한 형태로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넷플릭스 콘텐츠를 둘러싼 인공지능 논란
영상콘텐츠 업계에서는 인공지능 사용 흔적이 실수로 노출되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넷플릭스 콘텐츠 '기묘한 이야기'의 제작진인 더퍼 형제(맷 더퍼와 로스 더퍼)는 2026년 1월 결말 대본작업을 담은 비하인드 다큐멘터리 화면에서 구글문서 옆에 인공지능 챗GPT창이 열려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팬들 사이에서 인공지능 대본작성 의혹에 휩싸였다.
당시 시리즈의 결말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던 상황에서 인공지능 의혹이 일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창작자가 직접 고민한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의혹은 작품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
더퍼 형제가 실제로 인공지능을 대본작업에 활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당 논란은 인공지능 사용 여부가 소비자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넷플릭스 독점 스트리밍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포스터. ⓒ 넷플릭스
영화와 미술계로 확산된 논쟁
인공지능을 둘러싼 창작 논란은 사실 미술계에서 먼저 나왔다.
2022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서 게임 기획자 제이슨 M. 앨런은 인공지능 미드저니로 제작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작품으로 디지털 아트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당시 '붓질 한 번 하지 않은 작품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논쟁에 불이 붙었다. 앨런은 600개 넘는 텍스트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하고 포토샵으로 후처리를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창작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들의 노력과 숙련도를 무시한 '부정 수상'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영화계에서는 다른 형태로 인공지능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공지능 목소리 합성기술을 활용해 배우의 발음과 억양을 다듬은 영화 '브루탈리스트'가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자, 일각에서는 "AI의 도움을 받는 것은 도핑과 같은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육상이나 수영 경기에서 특정 순수가 약물을 복용하고 좋은 성적을 거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예술에서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은 성취가 순수한 창작으로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인공지능 논쟁이 던지는 새로운 질문
하오징팡의 소설에서 시작해 넷플릭스 콘텐츠, 미술작품과 영화에 이르는 이런 논쟁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의 창작 활동에서 인공지능 기술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나아가 사용했다면 얼마나 투명하게 밝혀야 하는가.
창작자가 인공지능을 검색엔진이나 편집도구처럼 보조적으로 다루는 것과 창작의 핵심적 부분을 통째로 맡기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필요하다.
아직 그 경계가 어디인지, 누가 그 경계를 정할 것인지는 어디에도 합의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창작의 도핑인가, 보조도구일 뿐인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창작자뿐 아니라 그 결과를 즐기는 시민들도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