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로 탄소 중립을 외치는 시대에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인 '북중미 월드컵'이 지구를 태우는 탄소 배출의 주범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북중미 월드컵에 환호하는 팬들 사이로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이 흥행 성공에 기뻐하고 있다. 그 하늘 위로는 항공기가 탄소를 내뿜고 있다. AI 이미지.
기후 정책 싱크탱크 '뉴 웨더 연구소(New Weather Institute)'는 2025년 7월 발간한 보고서 '국제축구연맹(FIFA)의 기후 맹점 : 지구가열화 속의 남자 월드컵'을 통해 이번 대회가 역대 가장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대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서 발생할 온실가스 배출량은 최소 900만 톤에서 최대 1500만 톤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유럽 국가 룩셈부르크가 1년 동안 뿜어내는 탄소(약 710만 톤)보다 많은 양이다. 2010년 남아공 대회부터 2022년 카타르 대회까지의 평균 배출량(약 470만 톤)과 비교하면 최대 3배나 폭증한 수치다.
탄소 배출이 이처럼 급증한 근본 원인은 FIFA의 '상업적 몸집 불리기'에 있다. 본선 참가국을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리면서 경기 수가 104경기로 63% 급증했다. 개최지마저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 전역으로 확장됐다. 경기장이 있는 16개 개최 도시 가운데 가장 멀리 떨어진 캐나다 밴쿠버와 미국 마이애미의 거리는 약 4500km에 이른다.
철도 인프라가 부족한 북미 대륙에서 선수단과 수백만 팬들은 항공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대회 전체 탄소 배출량 중 항공기 배출분만 최소 77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과거 대회 평균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행보는 대회의 모순을 상징한다. 인판티노 회장은 카타르 항공과의 후원 계약에 따라 제공되는 개인 전용기를 타고 북미 대륙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의 로스앤젤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D조 미국-파라과이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6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인판티노 피파 회장은 12일(한국시각) 멕시코시티 개막전 관람 후 곧바로 과달라하라로 날아가 대한민국 대 체코전을 지켜봤다. 13일 LA로, 14일에는 다시 샌프란시스코와 밴쿠버를 차례로 찾았다. 하루에 두 경기씩 관람하겠다는 회장의 전용기 투어 일정이 이어지는 동안, 하늘에는 엄청난 양의 탄소가 뿌려졌다.
피파는 지속가능성과 탄소배출 감축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으로 보는 비판도 제기된다. 피파가 세계 최대 화석연료 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에너지 기업 아람코와 대형 후원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 계약으로 인한 석유 매출 증가가 결과적으로 약 3000만 톤에 달하는 추가 온실가스를 유발할 것이라 지적했다.
탄소 배출 문제는 이번 대회로 끝나지 않는다. 월드컵 100주년을 맞아 유럽·아프리카·남미 3개 대륙, 6개국에서 열리는 2030년 월드컵은 약 610만 톤의 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막 기후 속에서 대규모 냉방이 필요한 2034년 사우디아라비아 월드컵의 예상 배출량은 약 860만 톤에 달한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2026년 6월10일 멕시코 멕시코시티 에스타디오 아스테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FIFA 월드컵 트로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회의 열기는 몇 주면 식지만, 탄소는 대기 중에 쌓이며 지구를 더욱 끓어오르게 만든다. 축제가 끝나면 환호는 사라지지만, 기후위기의 청구서는 남는다. 막대한 수익은 FIFA가 거두고, 탄소 배출이 남긴 환경적 비용은 전 세계가 떠안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규모 탄소 배출을 유발하면서도 책임은 팬들의 개인적 탄소 감축 노력에 떠넘기는 피파의 모순 속에서 월드컵은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대표적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물론 스포츠는 국경과 문화를 넘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개최국과 도시에는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 축제다. 그러나 축제가 남기는 환경적 비용이 그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래 세대가 치러야 할 대가를 외면한 채 현재의 수익과 흥행만 추구하는 소비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 오염을 축제의 불가피한 부산물로 받아들일 것인지 충분히 줄일 수 있는 비용으로 인식할 것인지는 결국 피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월드컵이 얼마나 크게 열리는지를 경쟁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얼마나 지속 가능하게 치를 수 있는지를 묻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