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JTBC 토일 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말도 안 된다"였다.
재벌 회장이 사고로 축구선수의 몸에 들어간다. 회장이 보모와의 사이에서 낳은 숨겨진 딸은 본처 자식들의 눈을 피해 아버지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한다. 쌍둥이 자녀는 아버지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채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회장은 축구선수와 영혼이 뒤바뀐 상태에서 자신이 세운 그룹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을 내린다.
현실에서는 단 하나도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모든 설정을 몇 회 안에 몰아넣는다.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던 지인은 인턴이 부장에게 '일의 핵심'을 모른다고 지적하는 장면에서 결국 탄식을 내뱉었다. 개연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JTBC에서 방영되는 토일 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이 매회 자체 시청률을 경신하며 최근 시청률 9.5%를 넘어섰다. ⓒJTBC 공식홈페이지 갈무리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빠져든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시청자들이 반응하는 것은 설정의 현실성이나 사건의 개연성이 아니라 권력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다. 평소에는 접하기 어려운 재벌가의 승계 갈등과 권력 암투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평범한 인턴이 조직의 핵심 의사결정에 개입해 임원들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비현실적 이야기 속에 의외로 현실적 장면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회장의 말 한마디에 침묵하는 이사회와 오너의 눈치를 보는 경영진, 능력주의를 말하면서도 결국 측근을 중용하는 인사 관행, 그리고 여전히 한국 기업 곳곳에 남아 있는 장자 승계에 대한 기대감까지. 설정은 판타지지만, 그 안에 배치된 디테일은 낯설지 않다.
물론 드라마 속 재벌가는 실제보다 훨씬 극단적이다. 승계 갈등은 더 자극적이고, 권력 다툼은 더 노골적이며, 문제 해결은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이 세계를 완전히 허구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서 현실의 단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실제 재계 역시 드라마와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은 아니다. 최근에도 총수의 법적 리스크를 둘러싼 '책임경영'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춘 기업에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오너의 의중이 얼마나 반영되는지가 관심사가 된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거수기 이사회' 논란이나 오너의 이사회 의장 겸직 문제는 여전히 기업 지배구조의 단골 이슈다.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기업들에서는 후계자의 경영 능력 검증과 승계 과정에 맞물린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핵심 경영 과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현실은 드라마처럼 자극적이지 않지만, 드라마가 가져온 재계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결국 이 드라마의 매력은 재벌 판타지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너의 권력과 승계를 둘러싼 긴장감, 전문경영인과 총수 사이의 미묘한 힘 균형 등 우리가 익숙하게 접해온 현실의 요소들을 극적 이야기로 재구성한 데 있다.
현실에서는 많은 문제가 오랜 시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갈등의 원인이 드러나고 문제들이 빠른 속도로 정리된다. 현실이라면 알기 어려운 진실이 밝혀지고, 결국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진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잠시 개연성을 내려놓는다. 현실의 복잡함과 답답함은 이미 뉴스에서 충분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 작품에 몰입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책임과 정의가 서사 안에서 또렷하게 작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 권력의 흐름과 작동 방식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정리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해답과 결말이 제시되는 경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