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시작된 '잠실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올공 시위)가 11일 차에 접어들면서 집회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7일 스레드에 올공 시위 참석 사진과 함께 "오늘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올림픽공원에서 여러분과 함께 재선거를 외치겠다"고 적었다(왼쪽).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태극기를 그리고 있다. ⓒ장동혁 스레드/연합뉴스
당초 집회 참여 비중이 높았던 2030 세대는 '참정권 보장'을 핵심 요구로 내세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장에서는 '부정선거' 주장이 확산됐고 과거 극우 성향 집회에서 자주 등장했던 성조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극우세력과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층인 이른바 '윤 어게인' 세력이 집회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주말을 앞두고 12일 저녁 다시 규모를 커져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국민의힘 인사들과 극우 진영 인사들의 현장 방문이 이어지면서 집회는 재선거와 특검을 요구하는 '극우 아스팔트 집회'로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까만 모자와 까만 마스크 차림으로 연일 올공 시위 현장을 찾았다. 장 대표는 현장에서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부정선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며 부정의혹 의혹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4일 스레드에 자신이 직접 적은 피켓 문구 이미지를 올렸다. ⓒ장동혁 스레드
장 대표는 13일 페이스북에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입틀막 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한참 지났다"며 "재선거, 특검, 선거제도 개혁, 선관위 개혁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 모든 것이 국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여야 모두 '올공'에 올인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잇따라 올공 시위 현장을 찾으며 힘을 보태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올공 시위에서 장동혁 대표를 만나 주먹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특히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다시 올림픽공원을 찾았다고 알렸다. 나 의원은 현장에서 태극기 색칠 자원봉사에 참여한 모습도 공개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찾아 태극기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 의원은 "모든 사태의 최종 책임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있다. 측근이 장악한 선관위의 총체적 불법과 직무유기를 이대로 덮는다면, 이는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린 명백한 탄핵 사유"라며 "야당 주도의 특검을 거부하는 것 역시 이 정권이 헌정 파괴 사태의 공범임을 자백하는 것에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이어 "투표용지 품절 선거구와 부실부정 근거가 드러난 선거구부터 조속히 재선거하고 총체적 부정이 밝혀지면 전면 재선거로 나아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나 의원은 "내가 서울시장 당선자였다면 당장 잠실 올림픽공원 시위 현장으로 가서 재선거를 선언했을 것 같다는 기자회견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며 "내가 출마하고 싶어서 그런다느니 하는 저질공세에는 대응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저 원칙과 상식을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역시 올공 시위에 참여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지난 8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 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진숙 국회의원 당선인(대구 달성)이 5일 오후 페이스북에 서울 강남구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에 참여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진숙 페이스북
이진숙 국회의원 당선인도 14일 올공 시위에 참석했다. 앞서 이 당선인은 6일 페이스북에 올공 시위 참석 소감을 전하며 현장 분위기를 4·19혁명에 견주기도 했다. 이 당선인은 "그곳에서 4.19를 보았다"며 "청년들이 90 퍼센트 이상을 차지한 현장. '재선거'의 함성이 그대로 묻히면 자유대한민국은 죽는다"고 주장했다.
한국사 강사 출신의 전한길씨와 전씨의 지지자들이 12일 개표소 봉쇄 시위 현장인 서울 송파구 SK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잠실7동 제2투표소에 보관돼 있다 사라진 투표용지 보관상자 중 1개를 제보를 통해 확보했다고 주장하며 상자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현장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집회의 정치화에 대한 당혹감도 감지된다. 올공에 참석한 시민은 9일 스레드에 "부정선거, 부실선거라는 단어로 서로를 극우, 극좌로 몰아간다"며 "투표용지가 없었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미약하지만 힘이라도 보태려고 간 건데 막상 좌우를 떠나 일반 시민이라는 단어는 없는 건가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이 생긴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6일 스레드에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당했다는 사실은 누가 당선됐든 변하지 않는데, 왜 이걸 가지고 좌파와 우파를 나누나"라며 "오히려 오세훈이 당선됐으면 좌파 쪽이 들고일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올공 시위 현장에서는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넘어 과도한 음모론성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사 강사 출신 극우 유튜버 전한길 씨는 이재명 정부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전씨는 12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이 (핸드볼경기장) 안에 불 지를 수 있다. 그리고는 우리들(시위대)이 가서 불 질렀다고 거짓말할 것이다"며 "안에다가 민(주)노총이라든가 개딸들 1~2만명 동원해서 패싸움을 일으키는 거야. 또다시 유혈사태가 발생하면 경찰이 투입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전씨는 "제2의 이태원 참사"까지 언급하며 "경찰이 진압하고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으니까 결국은 한쪽으로 쏠리겠죠. 그래서 저는 안에서 (출입구를) 용접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결국 떼거지로 죽이죠? 원인 제공은 이재명이지만 언론에는 우리들이 그 짓 했다 이렇게 보도할 거다"라고 말하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빚어진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체육단체들이 업무 정상화 호소문 발표 기자회견을 열자 한 봉쇄 시위 참가자가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잠실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여파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핸드볼경기장에 사무실을 둔 대한펜싱협회와 대한수중핀수영협회 등 대한체육회 산하 9개 단체는 국제대회를 코앞에 두고도 정상적인 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19일 인도 델리 아시아선수권대회와 22일 인천 세계핀수영선수권대회를 앞둔 선수들은 이날 현재 경기 장비조차 반출하지 못하고 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과 산하 체육단체들은 15일 오후 2시30분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상황과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잠실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를 즉각 강제 해산하기보다 대규모 충돌과 안전사고, 정치적 논란 등을 고려해 현장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출입 방해와 사적 검문 등 개별 위법 행위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법질서 훼손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