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사가 가고자 하는 반도체 기판 기술의 트렌드가 고다층(높고 많은 층수), 그리고 고면적(넓은 면적)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LG이노텍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분야에서 차별화한 경쟁력을 갖춘다면 혹시 시장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조지태 LG이노텍 패키지솔루션사업부장 전무는 6월16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이노텍 본사에서 열린 패키지솔루션사업부 반도체 기판 기자간담회에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조지태 LG이노텍 패키지솔루션사업부장 전무가 6월16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이노텍 본사에서 열린 패키지솔루션사업부 반도체 기판 기자간담회에서 사업 소개를 하고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반도체 기판은 반도체와 메인보드 사이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부품으로 미세회로가 형성돼 있는 고밀도 회로 기판이다. 쉽게 말해 중앙처리장치(CPU)나 메모리 등 반도체 칩을 얹어서 보호하고 연결하는 판을 의미한다. 인공지능(AI) 시대 ‘초미세 반도체 칩 아래 도화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LG이노텍은 반도체 기판을 생산하는 패키지솔루션사업부 영업이익을 2031년 1조 원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패키지솔루션사업부 연간 영업익은 2025년 1289억 원을 나타냈고 2026년에는 2400억 원 안팎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5년 만에 영업이익은 4배 이상 늘리겠다는 공격적 청사진이다.
LG이노텍은 1970년 전신인 금성알프스전자 출범 이후 50년 이상 쌓아온 기판 업력을 기반으로 AI 산업 성장에 따라 열린 기회를 잡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LG이노텍은 무선주파수 패키지형 시스템(RF-SiP), 플립칩 칩스케일 패키지(FC-CSP),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등 기판 3종을 생산하고 있다.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스마트폰 무선통신용 RF-SiP를 넘어 AI 산업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FC-CSP와 FC-BGA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RF-SiP 기판은 LG이노텍이 2025년 기준 글로벌 상위 5개 고객사 대상 시장점유율 65%를 기록한 주력 제품으로 LG이노텍은 2026년 점유율을 80%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이노텍은 기판에 공 모양으로 이뤄져 나란히 배열했을 때 공백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납땜용 구슬 대신에 구리기둥을 세우는 신공법(Cu-post)을 2024년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에 적용했다. 이 공법은 부품 가짓수가 늘어나는 가운데 슬림화를 추구하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LG이노텍이 현재 시장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 됐다.
최근 AI 시장에서 CPU, 메모리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 칩들에 반드시 필요한 반도체 기판 수요가 덩달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LG이노텍은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나 메모리 반도체를 메인보드에 고집적·초소형 패키징하는 FC-CSP와 PC와 서버 및 통신용 대면적 패키지 기판으로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라 주목받고 있는 FC-BGA 기판 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FC-CSP 기판은 당초 모바일 AP용으로 주로 사용되다 적용 영역이 메모리 분야로 본격 확장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의 학습형 AI가 주도해 왔는데 앞으로는 학습한 방대한 양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추론하는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메모리 탑재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메모리반도체 패키징을 담당하는 FC-CSP 기판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LG이노텍은 고객사의 고성능 제품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미세회로를 구현하는 ‘Cu Pillar’ 기술, 데이터 처리용량은 높이면서도 기판 두께는 줄이는 ‘박판 기술’ 등을 앞세워 글로벌 공급망이 형성되고 있는 AI용 FC-CSP 기판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또 최근 1조 원가량의 증설 투자를 결정한 베트남에서도 선제적으로 FC-CSP 기판 생산라인을 늘리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황정호 LG이노텍 패키지솔루션마케팅담당 상무는 “메모리용 FC-CSP 기판 신규수주가 지속되면서 구미의 반도체 기판 생산라인은 현재 ‘풀가동(가동률 100%)’ 상태”라며 “6월 착공하는 베트남 반도체 기판 신공장에서 FC-CSP와 RF-SiP 기판 생산라인을 가장 먼저 늘려 국내외 고객 수요에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LG이노텍은 대면적 FC-BGA 기판도 새로운 무기로 삼아 경쟁력을 쌓아 올리고 있다.
고성능 반도체 칩 적용 영역이 스마트폰에서 AI 서버와 데이터센터까지 확대되면서 대형 기판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FC-BGA 기판의 수요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FC-BGA는 FC-CSP의 대형 버전으로 FC-CSP 기판보다 면적은 18배 이상, 층수는 최대 22층으로 4배가량 늘어난다.
시장조사기관 인텔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FC-BGA 시장 규모는 2025년 54억2천만 달러(약 8조2100억 원) 규모에서 2032년 95억4800만 달러까지 연평균 10.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이노텍의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기판 실물 모습. ⓒ허프포스트코리아
기판의 면적이 커지고 쌓아 올려야 하는 층수가 많아질수록 자연스레 공정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LG이노텍은 기판의 성능을 고다층·대면적을 통해 고도화하면서도 휘어지는 현상(Warpage)을 제어하는 공정기술을 개발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LG이노텍은 가로·세로 각각 85mm 대면적 양산기술을 확보했고 120mm 초대면적 기판도 개발하고 있다.
LG이노텍은 2026년 3분기 PC CPU용 제품 양산에 본격적으로 돌입해 FC-BGA 기판 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또 추가적으로 생산능력 증설을 검토하면서 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다소 늦은 2022년부터 FC-BGA 사업 진출을 선언했지만 기술력과 양산역량을 토대로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지태 전무는 “기존 반도체 기판은 LG이노텍이 글로벌 최고지만 FC-BGA는 후발주자”라며 “‘후발’이라는 딱지를 떼는 시점을 2030년, 2031년쯤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증권업계에서도 FC-BGA를 비롯한 LG이노텍의 반도체 기판 사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6월15일 LG이노텍 분석보고서에서 “미국 대형 고객사들의 요청에 따라 FC-BGA 신규 증설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 긍정적”이라며 “광학솔루션사업부와 함께 패키지솔루션사업부가 AI 인프라 생태계 핵심으로 재평가되는 만큼 중장기 실적 전망치를 크게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KB증권은 LG이노텍의 FC-BGA 매출이 2026년 1400억 원에서 2030년 2조1천억 원까지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지태 전무는 “LG이노텍은 고객보다 한 발 앞서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고 기술을 고도화하며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성장해 왔다”며 “차별화한 기술력을 발판 삼아 새로 열리는 반도체 기판 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확대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