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회장의 적극적인 부인에도, 애나그램이 승계 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셀트리온 그룹 계열사 애나그램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최대주주 등의 보유 주식수가 변동됐다고 공시했다. 유상증자 날짜는 5월29일이다.
이번 유상증자에 따라 서진석 셀트리온 대표이사 사장의 지분율은 기존 50.49%에서 93.92%로 올랐다. 서진석 사장의 동생인 서준석 셀트리온 북미본부장의 지분율은 49.51%에서 6.08%로 낮아졌다.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서진석 사장만 참여하고 서준석 본부장은 참여하지 않았다. 서 사장은 신주(보통주) 3백만 주를 주당 100원에 총 3억 원을 들여 인수했다.
형제가 절반씩 나눠갖던 지분을 사실상 장남에게 몰아준 모양새다.
◆ 서진석·서준석 지주사 지분 없어 : 승계작업 지지부진
애나그램은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두 아들인 서진석·서준석 형제가 2025년 12월 자본금 100만 원을 들여 설립한 회사다.
사업목적으로는 ‘경영 컨설팅 및 공공 관계 서비스업’을 영위한다고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분 100%를 소유했지만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는 맡지 않았다.
애나그램이 설립되자 시장에서는 서정진 회장의 승계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이 회사가 ‘승계 지렛대’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왔다.
현재 셀트리온 그룹의 핵심 사업회사인 셀트리온의 최대주주는 지주회사인 셀트리온홀딩스로 지분 25.62%를 들고 있다. 아울러 특수관계인 중 개인이 아닌 법인으로 의약품 및 화장품 사업을 하는 셀트리온스킨큐어(2.17%)가 있다.
그런데 두 회사는 사실상 서 회장의 개인회사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서 회장이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셀트리온홀딩스 지분율은 98.13%, 셀트리온스킨큐어 지분율도 71.73%에 이른다.
반면 서진석·서준석 두 사람은 두 회사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셀트리온 지분 역시 서 사장만 소량(3254주, 0.00%)을 보유하고 있을 뿐, 서 본부장은 들고 있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을 보면 셀트리온 그룹의 지분 승계 작업은 거의 진행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서 회장이 1957년생으로 70세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승계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2세 형제가 회사를 설립하자 승계 통로라는 추측이 나온 것이다.
다만 서 회장은 애나그램의 승계 통로 활용 가능성에 대해 적극 부인했다.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애나그램에 대해 질문하자 서 회장은 “회사 이름도 오늘 처음 알았다”,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셀트리온과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회사 쪽도 셀트리온의 자금이나 지분이 단 1원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개인회사임을 강조했다.
◆ 장남 지분율 확대에 주목
서 회장의 적극적인 부인에도, 시장에서는 애나그램이 중장기적으로 승계 과정에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한다.
우선 오너 일가가 애나그램의 자본금을 늘린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를 키우려는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자금을 투입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즉, 이번 유상증자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려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장남 서 사장의 지분율을 키운 것을 두고 장남으로의 승계를 추진하면서 후계구도 선정의 잡음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앞으로 애나그램은 유망한 신사업을 전개하거나 투자를 진행해 기업가치를 키우고 자금을 모아, 형제의 승계 재원을 마련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시장에서는 애나그램이 셀트리온홀딩스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옥상옥 구조를 형성하거나 셀트리온 지분을 직접 확보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는 셀트리온 그룹 지배구조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키워 주주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애나그램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등 불법·편법 방식이 활용되는 경우 셀트리온의 기업가치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사법적 리스크에도 노출될 수 있다. 향후 이 부분에 대해 시장과 주주들의 감시의 눈이 더욱 날카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진석·서준석 형제는 당장은 셀트리온과 관계없는 독자적인 사업이나 투자를 추진하면서 재력을 키운 뒤 훗날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