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당론으로 추인하자 그동안 신중론을 펴온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갑작스레'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해당 사안에 침묵하고 있으며, 청와대에서는 정 장관을 연말까지 유임시키려는 기류가 감지된다.
정 장관이 검찰개혁을 두고 '타협적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은 그동안 끊이질 않았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혼란이 이어질 동안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일까지 거론되면서 결국 정 장관 사퇴 문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27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 장관은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며 다시 한번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신설로 검찰개혁이 95%는 달성됐다"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말했다.
민주당은 27~28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29일 전체회의를 거쳐 30일 보완수사권 폐지를 뼈대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토론)가 시작된다고 해도 24시간 뒤 종결 절차를 밟으면 31일에는 처리가 가능하다. 법무부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형사소송법 개정의 '뒷감당'을 해야하는 핵심 부처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것을 두고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일찍이 청와대는 지난해 6월 정 장관을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며 "내실 있는 검찰개혁의 아이콘"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지명 직후부터 "국민에게 피해가 없는 개혁"과 "야당과 충분한 협의"를 강조하며 근본적 검찰개혁론과 거리가 있는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이에 정 장관의 사의 표명을 두고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장 장관은 지난해 7월 후보자로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수사·기소 분리를 '거스를 수 없는 개혁 방향'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보완수사권을 놓고는 "논의가 필요하다",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취임 이후인 지난해 8월에도 중수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두는 방안에 대해 수사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중수청을 법무부 산하에 두자는 주장으로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비난 문자가 쇄도하기도 했다.
정 장관은 여기에 경찰에서 공소청으로 사건을 모두 송치하는 '전건송치'의 부활, 검사의 수사지휘권 강화, 보완수사 범위 확대 쪽을 주장했다. 이에 법무부와 민주당 사이 의견 차이가 공개적으로 드러나면서 혼란이 커졌지만 청와대는 당시에도 교통 정리에 나서질 않았다.
이에 이 대통령이 정 장관의 '신중론' 쪽에 기울어져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 1월 새해 맞이 기자회견에서 보완수사를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맞다면서도,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등에는 예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6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도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최종 판단은 국회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 여파로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달 중순까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안을 놓고 내부 갈등이 격화했다. 이번달 14일 의원총회에서는 발언한 의원 14명 가운데 9명이 보완수사권을 일부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도부도 이틀날 "보완수사권 폐지를 당론으로 의결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당대회를 앞두고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지지층의 압박이 거세지고, 당권 주자들의 선명성 경쟁까지 겹치면서 흐름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왼쪽)과 김한규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가 24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의원총회 직후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도부는 22일 전면 폐지 방침을 공식화하고 24일 의원총회에서 이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민주당이 지지층 여론에 밀려 전면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하자, 그동안 신중론을 고수해 온 정 장관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권의 혼란과 잡음의 발원지로 청와대가 지목되고 있다. 애초부터 청와대는 검찰개혁 타협론자 또는 신중론자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 스스로 검찰개혁에 대한 분명한 설명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개혁안을 집행할 해당 부처 장관은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가 앞으 얽히고 얽힌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