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는 막을 내렸지만 선거를 둘러싼 후폭풍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개표가 모두 종료된 뒤에도 일부 부정선거론자들은 개표소 일대에 집결해 밤샘 농성을 벌이며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5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해 시위대에 가로막혀 반출되지 못했던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의 투표함이 뒤늦게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약 50명이 경찰의 진입을 저지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고, 경찰은 현장 정리 끝에 투표함을 반출할 수 있었다. 이날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선거 전까지 부정선거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하던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에는 입장을 바꾸고, 35시간 동안 봉쇄됐던 잠실7동 제2투표소 투표함 개표로 국민의힘 7석으로 예상됐던 비례 의석이 8석으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일부 부정선거론자들은 재투표를 요구하며 여전히 부정선거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신봉하게 만들었을까? 부정선거론은 비이성적 주장임에 분명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선거관리와 미숙한 대처도 하나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고위직 자녀·친인척 특혜 채용 비리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2024년 11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는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내부 조직 관리 문제가 여론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이는 선관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논란은 2022년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의 아들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23년에는 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 자녀들의 경력 채용 사례가 잇따라 드러났고, 결국 감사원 감사로 이어졌다.
이에 감사원이 2025년 2월 최소 10명의 전·현직 선관위 직원 자녀가 부정 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의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된 경력채용 291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878건 이상의 규정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이에 선관위는 2025년 4월 고위직 자녀 8명에 대한 임용 취소 결정을 내렸지만, 당사자들은 이에 불복해 선관위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했다. 특혜 채용 과정에 관여해 징계를 받은 직원 15명 가운데 11명 역시 소청 절차에 들어갔다.
소청심사청구는 공무원이 징계나 불리한 처분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소청심사위원회에 구제를 요청하는 행정심판 절차다.
이후 2025 년 8월 소청심사위원회는 자녀 8명 소청을 모두 기각했고, 징계 직원 11명 중 9명은 기각, 2명은 일부 감경 처리했다.
제21대 대선 선거사무원 대리투표 논란
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첫날 남편 명의로 대리투표를 해 공직선거법상 사위투표 혐의를 받는 선거사무원 A씨가 2025년 6월 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는 2025년 제21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선거 관리 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사전투표 첫 날인 29일 경기도 김포시와 부천시에서는 지난해 제22대 총선 투표용지가 각각 1장씩 발견됐다. 사전투표 개시 직전 선거사무원과 참관인들이 투표함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선관위는 처음에는 "지난 총선 당시 유권자가 회송용 봉투에 투표지를 넣지 않고 집으로 가져갔다가 올해 몰래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조사 결과 투표지가 투표함 뚜껑 틈에 끼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자 "지난해 개표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설명을 번복하고 사과했다.
충분한 사실 확인 없이 유권자 책임 가능성을 먼저 언급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같은 시기 서울 강남구의 한 사전투표소에서는 선거사무원이 배우자의 신분증을 이용해 대리투표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강남보건소 소속 계약직 공무원으로 사전투표 사무원 업무를 맡고 있던 A씨는 배우자 명의로 투표용지를 발급받아 먼저 투표한 뒤, 같은 날 자신의 신분증으로 다시 투표를 시도하다 적발됐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대리투표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는 중대한 선거 범죄다.
6·3 지방선거 본인 확인 오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강원 춘천시 봄내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석사동 제6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도 선거 관리 과정의 허점이 드러났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별개로 대구의 한 사전투표소에서는 신원 확인 과정의 오류로 인해 다른 사람 명의의 투표가 이뤄지는 일이 발생했다.
대구시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사전투표 첫날인 5월 29일, 거동이 불편한 사촌 언니 B씨의 신분증을 보관하고 있던 A씨가 요양보호사와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의 신분증이 아닌 B씨의 신분증을 제시했고, 선거사무원은 이를 본인 신분증으로 착각해 투표 절차를 진행했다.
문제는 약 10분 뒤 실제 명의자인 B씨가 투표소를 방문하면서 드러났다. 전산상 이미 투표를 마친 것으로 처리돼 B씨는 즉시 투표할 수 없었다.
선관위는 CCTV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행정 절차를 거쳐 다음 날 B씨가 정상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다만 A씨가 행사한 표는 유효표로 인정됐으며, 중복 투표만 방지하는 방식으로 사안을 처리했다.
3·15부정선거로 태어난 ‘헌법기관’ 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1963년 1월 처음 출범했다. 정치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 관리를 수행하라는 것이 선관위에 부여된 존재 이유이자 정체성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반복된 특혜 채용 논란과 선거 관리 부실로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선관위가 지금이라도 반복되는 문제의 원인을 철저히 점검하고, 조직 문화와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부정선거론의 확산도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7장 제114조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