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요식업에 뛰어들어 밤낮없이 고생하던 오랜 친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요리비법과 같은 기밀 사항은 '영업비밀'임을 명확하게 표시하고 서약서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AI 이미지.
"야, 나 진짜 억울해서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내 가게 주방에서 2년 넘게 일하던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더니, 차로 10분 거리에 번듯하게 식당을 새로 차렸어. 근데 메뉴 구성부터 우리 집 시그니처 메뉴에 맛까지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베껴서 팔고 있다니까? 심지어 우리 단골들까지 그쪽으로 다 넘어가게 생겼어. 이거 영업방해나 도둑질로 당장 고소해서 가게 문 닫게 할 수 있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주먹구구식 조리법을 넘어 정확한 계량과 데이터에 기반한 '비법'을 고스란히 도둑맞은 친구의 억울한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갑니다. 내 청춘과 가족의 생계가 담긴 비법을 훔쳐 간 괘씸한 전 직원, 과연 친구의 분노 섞인 바람대로 당장 경찰을 불러 수갑을 채우고 가게 문을 닫게 만들 수 있을까요?
요리 레시피 자체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이런 억울한 상황에 부닥치면 가장 먼저 떠올리시는 것은 "내 레시피를 표절했으니 명백한 저작권 침해 아니냐!"는 분노일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법의 문턱, 특히 저작권법의 문턱은 생각보다 매우 높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음식의 맛을 내는 '레시피(조리법)' 자체는 원칙적으로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독창적으로 표현한 '창작물(표현)'을 보호하는 법률입니다.
소금을 10g 넣고, 180°C에서 40분간 끓인다는 식의 조리법은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일종의 '아이디어'이거나 '기능적 조작 방법'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특정 요리의 레시피에 저작권을 부여하여 독점하게 한다면, 인류의 요리 문화와 외식 산업의 발전은 그 순간 멈춰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의 훌륭한 비법을 몰래 베껴서 뻔뻔하게 장사해도 우리 법은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작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부정경쟁방지법)'이라는 법이 남아 있습니다. 도둑맞은 레시피가 단순한 요리법을 넘어 법적으로 '영업비밀'로 인정받기만 한다면, 가해자를 형사 처벌에 처하게 하는 것은 물론,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난관에 봉착합니다. 법원이 동네 식당의 모든 조리법을 무조건 영업비밀로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비로소 법의 보호를 받는 '영업비밀'로 탄생하게 됩니다.
첫째,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야' 합니다. 유튜브 레시피 채널이나 시중의 요리책, 인터넷 블로그에 이미 널리 공개된 평범한 조리법이라면 영업비밀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가게만의 독창적인 재료 배합, 온도 제어, 숙성 시간 등 타인이 쉽게 알 수 없는 고유한 노하우여야 합니다.
둘째, 이 레시피를 사용함으로써 경쟁자보다 확고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손님들이 그 특유의 맛을 잊지 못해 줄을 서서 먹고 식당의 매출이 높게 유지된다면, 이 요건은 비교적 쉽게 입증됩니다. 직원이 굳이 그 레시피를 훔쳐서 식당을 차렸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 레시피의 경제적 가치를 증명하는 셈이기도 합니다.
셋째, 소상공인들이 소송에서 가장 많이 패소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요건입니다. 사장님이 이 레시피를 영업비밀로서 지키기 위해 '객관적이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어야만 합니다.
대법원은 영업비밀의 성립 요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기가 막힌 비법이라도, 주방 이모님이나 단기 아르바이트생 등 누구나 주방에 훌쩍 들어와 레시피를 들여다볼 수 있고, 식자재 창고에 계량된 재료들이 아무런 보안 없이 방치되어 마음대로 사진을 찍어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법원은 "사장님 스스로도 평소에 비밀로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으면서, 직원이 나갔다고 이제 와서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면 법이 보호해 줄 수 없다"라고 하며 청구를 기각해 버립니다. 눈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 합법이 되어버리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식당의 소중한 레시피, 나아가 미래의 훌륭한 비즈니스 자산이 될 이 데이터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완벽하게 보호하려면 평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번째는, 비법이 있는 장소는 일반적인 장소와 분리하여 아무나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출입구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보안 구역)" 푯말을 부착하고, 핵심 재료의 계량과 배합은 사장님 본인이나 서약서를 쓴 소수의 믿을 수 있는 지정된 직원만 하도록 권한을 명확히 제한하세요.
두번째는, 레시피가 적힌 수첩이나 바인더 겉면에 붉은 글씨로 ‘대외비(Confidential)' 또는 '영업비밀'임을 아주 크고 명확하게 표시해야 합니다. 만약 레시피를 태블릿 PC나 컴퓨터 등 디지털 데이터로 관리하고 있다면, 반드시 폴더에 비밀번호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퇴근할 때는 서면 자료를 자물쇠가 있는 서랍이나 개인 금고에 보관하여 객관적인 '관리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필수입니다.
세번째는, 법정에서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무기가 되는 서면 증거입니다. 직원을 최초로 채용하여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 "가게의 조리법, 식자재 거래처, 고객 명부 등 경영 노하우를 재직 중은 물론 퇴사 후에도 외부로 유출하거나 훗날 동종 업계 창업 시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반드시 서면으로 받아두어야 합니다.
네번째는, 직원이 퇴사할 때 "그동안 업무상 알게 된 모든 기밀 자료를 반납 및 폐기하였으며, 이를 어길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퇴직자용 보안 서약서를 한 번 더 받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수십 년의 땀방울과 눈물, 그리고 수많은 실패의 데이터가 축적되어 완성된 레시피는 단순한 요리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식당의 심장부이자, 기업의 핵심 기술과도 같은 막대한 가치를 지닌 지식재산입니다.
"우리는 가족같이 일하는 사이인데 야박하게 무슨 서약서고 금고냐"며 낭만적인 생각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 넘어가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 권리는 오직 나의 관리 속에서만 지켜진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쓴이 김승현 변호사는 법무법인 선인 파트너 변호사다. 한양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거제시에서 행정법률 자문 공무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소송 현장을 누비며 법적 문제를 해결해 왔다. ‘승변’은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는 뜻에서 그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복잡한 법전 속에 갇힌 법률 상식이 아니라, 당장 내 삶을 지켜주는 유용한 생활 법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