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주요국에서 극우파 정당들의 인기가 지속되며 이들이 각국에서 실제 권력 획득을 노리는 현실 정치 세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들 정당은 과거처럼 단순히 반이민 정서만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가·주거난·에너지 비용·복지 문제 등 생활밀착형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며 지지세를 확장하고 있다.
나이젤 패라지 영국개혁당(리폼 UK) 대표가 5월8일(현지시각) 영국 머지사이드주 세인트헬렌스 지역 술집에서 새로 당선된 영국개혁당 후보들과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2일 유럽 지역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영국에서는 노동당·보수당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기존 양당 중심 정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5월7일 치뤄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극우파 성향 영국개혁당(리폼 UK)은 전체 5066석 가운데 1453석을 확보하며 1위를 기록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이 급진 좌파 이미지 탈피를 위해 중도 노선을 택하면서, 기존 지지층이던 북부 지역 유권자 일부가 녹색당 등으로 이탈해 표심이 분산됐다. 여기에 보수당의 저조한 지지율까지 겹치며 영국개혁당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는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중도 좌파와 우파 진영의 후보 단일화를 두고 혼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과 그의 측근 조르당 바르델라가 각각 약 30% 안팎의 지지율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이포프의 연구원인 제롬 푸르케는 "큰 변수가 없는 한 내년 대선에서 국민연합이 결선 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프랑스 좌파 진영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후보군이 난립하면서 최소 10% 안팎의 고정 지지층을 보유한 극좌파 장뤼크 멜랑숑 후보에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 제조업 국가인 독일 역시 저성장 국면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란 전쟁 여파에 따른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 속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사회민주당(SPD) 대연정 지지층 일부가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AfD)으로 이동하고 있다.
독일대안당은 지난해 2월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제2당으로 급부상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 정당 최초로 원내 2당 지위에 올랐다.또한 독일대안당은 올해 4월 여론조사기관 유고브 조사에서 지지율 27%를 기록하며 독일 정당 가운데 선호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독일 경제는 2023년과 2024년 2년 연속 역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성장률이 0.2%에 그치며 사실상 장기 침체 국면을 맞았다. 경기 침체와 에너지 가격 부담, 난민 문제 등이 맞물리며 과거 나치 역사 때문에 극우 정치에 유독 민감했던 독일에서도 반이민·반난민 정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동독 지역 중심이던 독일대안당 지지세가 최근에는 서부 지역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이다.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원내대표가 5월8일(현지시각) 프랑스 북부 에냉보몽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 81주년 행사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편 이들 극우 정당 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 교황청과의 갈등 이슈가 유럽 국민에게 반감을 사면서, 영국·프랑스·독일 극우 세력이 트럼프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각국 현실에 맞춘 '유럽형 우파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극우 정당의 실제 권력 획득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장벽이 적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 공영방송 채널4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차기 총선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정치 특성상 지방선거에서는 기존 양당에 대한 반감과 항의성 표심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반영되지만, 총선에서는 결국 노동당과 보수당 중심의 전통 양당 구도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을 내놨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나이젤 패라지가 이끄는 영국개혁당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응답 비율이 4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영국의 소선거구제 특성상 조직력이 강한 기존 양당 체제가 여전히 유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프랑스 역시 사회당 대표 올리비에 포르와 중도 좌파 정치인 라파엘 글뤽스만, 녹색당의 마린 통들리에와 공산당의 파비앙 루셀 등을 중심으로 내년 대선을 위한 후보 단일화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이를 통해 우파 세력의 득세를 막을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한 극우 성향 국민연합 역시 실제 정권 획득까지는 넘어야 할 장벽이 존재한다. 대권주자인 마린 르펜은 자금 횡령 혐의 유죄 판결로 현재 피선거권이 제한된 상태로, 오는 7월7일 항소심 결과에 따라 대선 출마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이 극우 성향 독일대안당과의 연정 불가 방침을 유지하고 있어, 극우 세력의 집권을 가로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