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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점점 안전해지는데, 취향은 반대로 용감해진다. 흥행을 계산하는 시대에, 누군가는 자신의 취향으로 영화를 선택한다.

배우 소지섭은 10년 넘게 해외 예술·독립영화를 국내에 소개해왔고, 빠더너스의 문상훈은 칸 영화제에서 직접 코미디 영화를 골라 처음으로 수입한다. 계산법도, 커리어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지만 닮은 점은 있다. 자신의 취향을 관객과 나누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많아지는 영화, 좁아지는 선택 : 흥행이 선택 기준이 된 시대

[허프 사람&말] 소지섭과 문상훈의 취향과 소신 : '흥행'만 남은 시대에 두 배우의 예술·독립 영화 수입이 고집스러워 눈부시다
크리에이터 겸 배우 문상훈(왼쪽)과 배우 소지섭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 BDNS'/'tvN D ENT'

해마다 전 세계에서는 수천 편의 영화가 태어난다. 많게는 1만5천 편에 이르는 영화가 극장과 영화제를 떠돈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 한국 관객 앞까지 도착하는 작품은 극히 일부다.

플래시가 터지는 영화제 레드카펫 뒤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영화를 어느 나라에 보낼지 치열한 필름 마켓 협상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작품을 사고 누군가는 선택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수많은 영화가 스크린에 한 번 걸려보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최근 극장가는 점점 더 안전한 선택으로 기울고 있다. 오티티(OTT,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로 어디서든 영화를 쉽게 볼 수 있는 시대, 관객은 줄고 투자는 위축되면서 자본은 자연스럽게 흥행이 검증된 시리즈 영화와 대형 상업영화로 쏠린다. 그 사이 낯선 독립영화나 해외 코미디 영화들은 상영관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쩌면 지금은 망하지 않을 영화가 먼저 선택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취향이 만든 선택 : 문상훈이 발견한 코미디 영화

[허프 사람&말] 소지섭과 문상훈의 취향과 소신 : '흥행'만 남은 시대에 두 배우의 예술·독립 영화 수입이 고집스러워 눈부시다
배우 겸 크리에이터 문상훈이 5월 6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점에서 열린 영화 '너바나 더 밴드' 언론시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영화계 안팎에서 가장 뜻밖의 이름 중 하나는 2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문상훈이다. 코미디 유튜버 크루 빠더너스 소속이자 온라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겸 배우인 문상훈은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필름 마켓을 찾았다. 세계 각국의 바이어와 배급사가 뒤섞인 그곳에서 그는 직접 영화를 보고, 직접 수입을 결정했다. 그가 선택한 작품의 장르는 코미디였다. 이 장르는 그의 인생 전반에 깊게 새겨진 단어이기도 하다.

그가 고른 작품은 제목의 길이부터 심상치 않다. '너바나 더 밴드 : 전설적 밴드 너바나와는 별 관련 없는 너바나 더 밴드의 콤비 맷과 제이. 어느 날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황당한 작전을 세우고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이다. 

어딘가 문장이 끝까지 닫히지 않은 듯하고 누가 장난처럼 흘려 쓴 것 같은 제목이다. 문상훈은 시놉시스를 그대로 제목으로 가져왔다. 띄어쓰기를 포함해 87자에 달하는 제목만 읽어도 이미 영화의 첫 장면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용은 엉뚱하고 기발하다. 전설적인 록밴드 너바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동명의 밴드 멤버 맷과 제이가 공연을 위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다. 이들이 처음 만났던 17년 전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이다. 이 영화가 문상훈과 꽤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 나왔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특유의 유머로 비틀어온 그의 콘텐츠와 영화의 결이 닮아 있다.

나만의 맛집이 알고 보니 미슐랭? 

[허프 사람&말] 소지섭과 문상훈의 취향과 소신 : '흥행'만 남은 시대에 두 배우의 예술·독립 영화 수입이 고집스러워 눈부시다
영화 '너바나 더 밴드' 스틸 컷.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수입이 처음인 문상훈을 돕기 위해 국내 배급은 그린나래미디어가 함께 맡았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이름이 더해졌다. 번역에는 스탠퍼드대 영문학 학·석사 출신의 가수 타블로와 그의 딸 이하루가 참여했다. 캐나다 코미디 영화인 만큼, 캐나다에서 자란 타블로가 작품의 뉘앙스를 누구보다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문상훈은 4월 왓챠와 나눈 인터뷰에서 영화를 고를 때 가장 먼저 자신의 취향을 떠올렸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영화는 제대로 취향 저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마치 셰프가 그의 입맛을 정확히 알고 차려낸 오마카세처럼, 익숙하고도 좋아하는 유머와 감각이 자연스럽게 담긴 영화였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발견한 영화가 캐나다 국제영화제인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북미의 대표 영화제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서 관객상까지 받았다는 사실까지도 영화의 완성처럼 느껴졌다. 문상훈은 "우리 집 앞 백반집에서 파는 간장계란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슐랭을 받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개인적인 입맛이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사실은 세계 관객들도 함께 좋아한 맛이었다는 이야기다.

문상훈은 지난 6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들뜬 마음보다 먼저 긴장감을 털어놨다. 그는 "채점받는 기분"이라며 "맛집에 친구를 데려갔을 때 친구가 맛있게 먹는지 계속 보게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친한 친구와 꼭 큰 화면으로 봐달라"며 "제가 느꼈던 감정이 관객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는 오는 20일 관객과 만난다.

흥행보다 오래 남는 선택 : 소지섭이 좋아해서 계속 해온 일 

[허프 사람&말] 소지섭과 문상훈의 취향과 소신 : '흥행'만 남은 시대에 두 배우의 예술·독립 영화 수입이 고집스러워 눈부시다
배우 소지섭이 2022년 방송된 tvN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영화 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tvN D ENT'

반면 소지섭은 영화계에서 십년 넘게 조용히 영화 수입에 투자해 온 인물이다. 대형 상업영화 사이에서 쉽게 설 자리를 얻지 못하는 해외 예술·독립영화를 꾸준히 국내로 들여왔다. 누군가 흥행 가능성을 먼저 계산할 때 그는 그보다 자신의 취향에 이끌린 영화를 선택해왔다.

소지섭의 이름이 올라간 작품만 해도 30편이 넘는다. 영화 '필로미나의 기적',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미드소마', '그린 나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에서 '공동 제공 소지섭'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소지섭의 영화 사랑은 이벤트처럼 반짝하고 지나가는 종류가 아니다. 화제성을 위해 이름만 올리는 참여와는 결이 다르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는 '소지섭 선택한 영화는 일단 믿고 본다'는 말이 나온다. 

소지섭은 2022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영화 투자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비용이 꽤 많이 든다"면서도 "수익은 거의 마이너스"라고 웃어 보였다. 결국 자신의 수익을 다시 영화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선택들이다. 그는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오래도록 영화를 들여왔다. 좋아하는 영화를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다.

사실 흥행 가능성만 놓고 보면 이런 영화들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더 안전한 영화, 더 익숙한 이야기, 이미 성공이 검증된 작품들이 먼저 선택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끝내 조금 낯설고 이상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했던 장면과 감정을 한국 관객에게도 건네고 싶어서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영화를 추천한다는 건 결국 자신의 취향을 조심스럽게 상대에게 내어놓는 일이다. 문상훈의 첫 영화 수입 도전과 소지섭의 오랜 독립영화 애정이 맞닿는 지점도 결국 그곳이다. ‘돈이 되느냐’보다 ‘함께 보고 싶으냐’라는 마음에 더 가까운 선택이다. 

천만 영화 몇 편에 관객이 몰리고, 독립·예술영화는 점점 더 작은 시간표와 적은 스크린으로 밀려나는 극장가에서 이런 선택은 드물다. 그 드문 선택이 결국, 관객이 만나지 못할 뻔했던 영화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낸다. 그 시작에는 누군가의 사적인 취향이 있다. 결국 관객의 영화의 선택지는 조금씩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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