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이 최근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사이에 위치한 말라카 해협에 통행료를 부과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글로벌 논란이 촉발됐다. 말라카 해협은 전 세계 물동량의 약 25%가 지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말라카 해협의 위치. ⓒ 구글 지도 갈무리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즉각 반발로 이 문제는 빠르게 수그러들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 소동이 던진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란전쟁이 촉발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논쟁의 연장선에 있어서다.
미국은 이란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둘러싸고 아직도 종전협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4일 글로벌 싱크탱크와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이란전쟁이 촉발한 해협 통행료 논쟁은 수십 년간 유지돼 왔던 미국 중심의 자유해양 질서가 얼마나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시선이 나온다.
말라카 해협 통행료 논란, 해프닝이 되기까지
2026년 4월15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해협을 지나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 EPA=연합뉴스
푸르바야 유디 사데와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22일(현지시각) 자카르타에서 열린 행사에서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 옳은 건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유료 해상로'로 전환한 상황을 직접 거론하면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를 두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은 "통행권은 모두에게 보장돼 있고 해협을 폐쇄하거나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모하마드 하산 말레이시아 외무장관도 "4개의 연안국이 모두 협력해야 하며 일방적으로 폐쇄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외무당국의 빠른 반대로 이번 말라카 해협 통행료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국제법적으로도 근거가 없기에 이번 사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 된 것으로 보인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는 해협 연안국이 통과 통항을 방해하거나 일시중단을 종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해협 통행료 논쟁 - 흔들리는 팍스 아메리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I 생성 이미지.
말라카 해협 소동이 이처럼 주목 받는 이유는 그 배경이 된 호르무즈 해협 통행권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공습을 개시하면서 시작된 이란전쟁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오만과 마주보는 곳에 위치한 세계 원유 동맥으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했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상당부문은 막혔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세 자릿수를 오가고 있다.
글로벌 전문가들은 이번 이란전쟁으로 미국중심의 항행자유를 비롯한 국제질서에 지각변동이 찾아올 것이라는 관측을 내보이고 있다.
카시프 하산 칸 파라곤 국제대학교 교수는 아시아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패권체제는 갑자기 붕괴하지는 않지만 역사는 전략적 과잉행동의 순간에서 빠르게 변곡점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란전쟁이 미국의 패권몰락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바이라인 타임스는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로서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미국의 리더십으로 유지됐던 상대적 평화시대 '팍스 아메리카나'가 끝나고 있다"고 바라봤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싱크탱크 중동북아프리카포럼의 가드 이샤야후 선임연구원는 내셔널인터레스트 기고문에서 "미국은 이란전쟁을 수행하면서 유엔의 승인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큰 문제다"며 "이란전쟁에서 미국이 보여준 행태의 결과는 세계구조의 '무정부적 상태'를 초래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이 설정한 세계질서를 상징하는 유엔을 무시하면서 전체 틀을 깼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유엔체제의 붕괴는 유엔해양법협약을 비롯한 자유항행의 근거를 무력화도 뜻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발언으로 보인다.
말라카 해협에서 터진 단 하루짜리 발언이 전 세계를 흔들었다는 사실은 미국이 수십년간 지켜온 자유항행을 향한 신뢰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프랑스 매체 르몽드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란과 미국의 대치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시사한다"며 "그것은 바로 바다가 더 이상 '열린 공간'이 아니라, 다른 땅과 마찬가지로 '영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란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이 전쟁은 이미 '다음 호르무즈'를 예고하는 지정학적 도미노의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