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법적 안전'을 한국과 미국 고위급 안보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인연이 있는 로비업체를 통해 미국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왼쪽)이 2025년 1월1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비공개 리셉션에 참석해 국무·상무부 장관 지명자 등을 만났다. ⓒ 연합뉴스=워싱턴 특파원단
22일 미국 정치매체와 정책제안기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김범석 의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인사들을 움직여 쿠팡을 향한 한국정부의 제재 움직임을 막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범석과 루비오 '인연' : 로비업체 교체가 신호탄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이 2025년 1월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연합뉴스=워싱턴 특파원단
이런 추정의 핵심연결 고리로는 루비오 국무장관이 거론된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김범석 의장과 루비오 장관의 밀착관계의 근거로 쿠팡의 로비업체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쿠팡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재선한 뒤,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연계된 로비업체 푸탈라 스트래티지스와 계약을 끊고, 로비업체 '콘티넨털 스트레티지'와 새로 계약을 맺었다. 폴리티코는 '콘티넨털 스트레티지'를 쿠팡과 루비오 국무장관의 연결고리로 특정했다.
쿠팡의 2024년 미국 내 로비지출은 330만 달러(한화 약 48억 원)으로 2년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쿠팡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위원회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고 이를 통해 김범석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당시 김범석 의장은 루비오 국무장관, 하워드 루트닉 상무장관 등 행정부 핵심인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써본 적 없는 쿠팡이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로비 최강자가 됐다"고 꼬집었다.
폴리티코는 개인정보 유출로 한국에서 제재위험에 놓인 쿠팡이 미국기업을 자처하고 공화당 보수성향 인사들을 공략하는데 공을 들인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짚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 무역대표부 수석부대표 대행을 역임한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수석부소장은 폴리티코와 나눈 인터뷰에서 "쿠팡이 미국 정책입안자들에게 영향력을 얻는데 성공한 것 같다"며 "다른 미국 기업들과 달리 '한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 레이저처럼 집중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루비오 조현과 회담에서 '쿠팡 문제 암시' : 쿠팡, 한국 안보·외교까지 건드려
조현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이 2026년 2월3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 외교부
김범석 의장이 이끄는 쿠팡이 미국 정가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한국에 큰 문제로 떠오른 이유는 미국과 외교문제로 번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 선두에 내내 루비오 장관이 서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올해 2월 미국을 방문하면서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담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루비오 장관은 통상합의 이행과 관련해 미국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미국은 대미투자특별법안 처리지연을 두고 한국과 갈등을 빚고 있어 이와 관련한 대화가 오고간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회담내용을 잘 아는 정부관계자가 SBS를 비롯한 국내 언론에 전한 내용에 따르면 이 회담에서 쿠팡을 암시하는 듯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쿠팡이 한국의 안보·외교 영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4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22일 SBS와 한겨레, 동아일보 등 국내 언론의 취재에 따르면 미국 측이 '한국정부에 김범석 의장이 한국을 방문할 때 출국금지·체포·구속 등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면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 한미 고위급 안보협의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미국에 상장돼 있는 것을 고리로 로비를 통해 한국 내 사법절차를 회피하는 것을 넘어서,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까지 깊숙이 관여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이런 움직임은 올해 1월 김민석 국무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감지된 바 있다. JD 밴스 부통령은 당시 쿠팡 문제에 대해 미국의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전해진다.
월스트리트타임스는 밴스 부통령이 쿠팡과 같은 미국기업을 향한 규제를 중단하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쿠팡이라는 민간기업의 로비가 국가 안보협상의 연계고리가 된 전례없는 경우로 분석된다. 특히 루비오 국무장관과 연계된 로비업체가 쿠팡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루비오 장관이 김범석 의장의 '워싱턴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현실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