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에 아시아 시장은 이미 '큰 손'인데, 왜 아시아인 캐릭터는 여전히 희생양으로 남아 있을까.
영화 '프라다는 악마를 입는다2'의 주인공 앤디와 그의 새로운 비서 친저우가 만나서 대화하고 있다. ⓒ20th Century Studios 유튜브 채널
오는 29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가 지난 17일 예고편 공개와 동시에 아시아인 캐릭터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정작 아시아인 캐릭터 재현은 시대 변화에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름·패션·행동까지, 차별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아시아인 캐릭터
주인공 앤디(앤 해서웨이)의 새로운 비서로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은 '친저우(秦舟)'다. 이 발음이 해외에서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멸칭인 '칭총(ching chong)'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당 영상을 본 누리꾼들은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몇 년 동안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게 충격이다", "아시아인이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보여준다", "2026년에도 할리우드가 이런 선택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만약 흑인 멸칭인 'N'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이름을 붙였다면 개봉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는 분노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영화 '프라다는 악마를 입는다2'의 주인공 앤디와 그의 새로운 비서 친저우가 만나서 대화하고 있다. ⓒ20th Century Studios 유튜브 채널
차별적 시각은 외형 묘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친저우는 화려한 패션 업계 종사자들과 달리 안경을 쓰고 체크 셔츠와 치마를 입은 촌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또한 상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자신의 높은 학력과 성적을 과시하는 장면은 '지능은 높지만 사회성은 떨어진다'는 아시아 엘리트에 대한 서구권의 잘못된 편견을 투영한다. 중국계 배우 선위톈의 과장된 연기와 어리숙한 행동 역시 아시아인을 주체적 인물이 아닌 희화화된 존재로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작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가졌던 백인 중심적 설정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더 무례하게 드러낸 셈이다. 할리우드가 다양성을 외치고 있음에도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아시아계 배우를 단순히 캐스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내고 어떤 시선으로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아시아 시장서 대대적 홍보, 정작 아시아인 캐릭터는 조롱거리?
배우 앤 해서웨이와 메릴 스트리프(왼쪽)가 8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레드카펫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6.4.8 ⓒ연합뉴스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다. 특히 중국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노동절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 '중국 시장의 돈은 벌고 싶으면서 중국인은 조롱거리로 소비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인종차별 논란이 확산되면서 SNS를 중심으로 보이콧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 시장 의존도는 높아지지만 문화적 감수성은 개선되지 않는 할리우드의 현실이 흥행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아시아 시장을 주요 소비처로 삼으면서도 정작 아시아인은 차별적인 도구로 소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아시아 앰배서더 영입에 사활을 거는 2026년의 현실과 달리, 영화는 여전히 과거의 괴짜 아시안 프레임에 갇혀 있다. 패션계를 다루면서 정작 해당 업계의 '큰 손'인 아시아인의 감수성을 건드렸다는 점은 뼈아픈 실책이자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이러한 논란은 할리우드 내 아시아 재현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UCLA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 2026 자료를 보면, 2025년 극장 영화에서 대사가 있는 역할 중 아시아계 비중은 6.3%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아시아계 캐릭터의 대표성이 인구 비율에 가까워지는 '비례적 대표성'에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영화 속 아시아인 재현의 문제, 량쯔충 "여전히 계속되는 투쟁"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 량쯔충(양자경)이 올해 2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동안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 량쯔충(양자경)은 할리우드 내 아시아계 배우들의 대표성 문제를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투쟁의 과정'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와호장룡', '007 투머로우 네버 다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아시아 여성 배우의 대표성을 확장해 온 인물이다.
량쯔충은 2023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할리우드 내 아시아계 대표성 변화에 대해 "여전히 계속되는 투쟁"이라며 "이런 문제들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언급한 '재현의 투쟁'은 아시아인을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이 아닌 낡은 고정관념에 가둬 묘사하는 할리우드 현실에 맞선 싸움을 뜻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제작 결정권을 독점한 특정 집단의 폐쇄적인 구조에 있다. 다양성을 외치며 아시아계 배우의 캐스팅이라는 양적 확대는 늘어났을지 몰라도, 제작 과정에서 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피드백이 결여되다 보니 결국 가장 게으르고 익숙한 방식인 고정관념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캐릭터를 입체적인 인간이 아닌 낡고 정형화된 프레임에 가두는 결과를 반복한다. 결과적으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와 같이 아시아 시장의 경제적 가치만 쫓고 문화적 존중은 결여된 문제로 드러난다.